주인공이었던 여자가 엄마가 되더니

엄마의 자존감에 대하여

by 우비


율이는 오늘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제발 다시 잠들기를 바라며 숨죽이고 등을 토닥여 줬는데도 용수철처럼 통 튀어 오르며 이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의 기상은 어쩜 그렇게 경쾌할까. 내 몸은 천근만근인데. 기저귀 갈고, 타요 자동차 줄줄이 세워 30분쯤 같이 놀았다. 그러고는 주스가 먹고 싶다 해서 복숭아 하나 믹서기로 갈아서 빨대 꽂아 먹였다.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해야 할 시간. 새수 안하겠다며 발버둥 치는 율이를 번쩍 안아서 욕실에 데려가 씻기느라 내 옷은 도리어 축축하게 다 젖었다. 아이는 보송하고 예쁜데 내 몰골은 그야말로 봐줄 수가 없다. 그 후에도 리모컨 심부름, 장난감 심부름, 주스 대령을 한 번씩 더 했다. 얼른 율이의 등원 시간이 되길 바라며.


‘나 어쩌다 이렇게 됐니. 내가 얼마나 귀하게 컸는데.’


엄마가 되어있는 오늘의 내 심정을 이야기하기 위해 추억 서랍을 좀 열어야겠다.


우리 집 식구가 열 세명이던 시절. 가족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이다. 서열로 따지면 할아버지가 우리 집 일등이었고 이등은 모두가 나라고 인정했을 것이다. 예쁨을 독차지했던 첫 손주. 아들 딸 차별하던 시대였어도 늘 내 몫의 인형, 내 몫의 동화책, 내 몫의 과자가 따로 있었다. 남자 식구들 밥상, 여자들 밥상을 따로 차렸는데 큰 손녀딸인 내 자리는 언제나 할아버지 옆자리였다. 우리집 일등 할아버지가 손수 생선 가시도 발라주고, 반찬을 집어 내 그릇에 올려주던 자리. 할아버지는 시내에 볼 일이 있으면 꼭 나를 데려가셨다. 아래위 맞춘 투피스도 사주시고, 에나멜 구두도 늘 새것이었다. 부족하지 않은 집에서 서러울 것 없는 생을 시작하며 나는 내 안의 공주를 키웠다.



중학교에 가서는 공부를 잘했다. 점점 얘기가 자랑 대잔치로 흘러가지만 오늘의 이야기를 위해 자랑을 좀 더 해야만 한다. 내 인생에 얼마나 자랑할 게 많았는지가 오늘의 내겐 너무나 중요하니까. 엄마 아빠는 내가 그렇게까지 공부를 잘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크게 아프지도 말썽을 피우지도 않고 크는 딸이면 그저 됐다 하셨단다. 중학교에 간 딸이 매번 반에서 1등을 하니 그때부터 기대란 걸 하셨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사랑받은 우리 집 첫째니까 공부를 잘해서 엄마 아빠를 더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칭찬 받고싶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성적이 좋으니 친구들, 선생님, 가끔 잘생긴 고학년 오빠들도 내게 관심을 보여 행복했던 나날이다 .


삼십 대의 나를 떠올리려니 좀 떨린다. 그야말로 내 인생의 황금기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크고 일도 열심히 하고 노는 것도 잘했다. 붕붕 날아다니며 온 세상을 여행하고, 하고 싶은 일들은 마음껏 했다. 월급을 모와 늘 어디든 떠날 준비를 했다. 시간의 틈이 나면 미련 없이 여행했다. 비행기 마일리지는 차곡차곡 쌓이고 자유로운 만큼 내가 좋았다.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TV 드라마에서도 선망의 직업. 콧대 좀 높고 제대로 똑똑하고 멋져 보이는 그야말로 있어보이는 직업. 좀비의 삶을 살지언정 카피라이터라는 내 직업이 좋았다. SNS에서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인정하고 나는 그게 또 그렇게 신나고 그래서 더더 열심히 내 인생을 펼치는 주인공의 길로 나아갔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여태 이뤄온 것과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은 마라톤을 완주해내는 것처럼 말이다. 얇은 서핑보드 한 장이면 거대한 파도를 자유롭게 타고 넘을 수 있는 것처럼 육아도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쳤다. 나는 밤샘도 채질이고 눈치도 타고났고, 체력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으니 육아도 잘 해낼거라 했다. 이랬던 나를 남편은 요즘 뻥쟁이라며 놀린다.


‘큰소리 뻥뻥 치더니만.’


오늘도 이 한 몸 바쳐 율이의 좋은 아침을 열어줬는데 왜 생각만큼 기쁘지가 않을까.


좋은 엄마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엄마는 애당초 주인공을 꿈꾸면 안되는 걸까?


영화나, 드라마 속 좋은 엄마는 김혜자, 고두심, 김혜숙 같은 여배우들이 떠오른다. 드라마 속 고두심 엄마에게 자뻑의 역사가 있었을까. 영화 속 김헤숙 엄마는 자기만족이 최고인 인생을 살고 자식들을 낳았을까. 아닌 것 같다. 모두 하나같이 왜 자신은 없고 힘들게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고 계신 걸까. 주인공을 꿈꾸면 그게 근본적으로 안 되는 걸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쭈그러져 율이의 시중을 들고 있으니 근질근질 마음이 요동치는 게 아닐까.


당분간 주연은 글렀고 착실한 조연이라도 되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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