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필라테스 수업

by 우비



거울을 볼 때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나 다시 돌아갈래~~~~’

요즘 나의 외모 상태는 수습 불가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미용실 간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언제나 찬란한 색을 뽐내던 손톱은 흰색이 보이지 않게 바짝 잘랐다. 손에 물 마를 새 없다는 표현이 이때를 위해 있는 말인지 수도 없이 씻고 설거지하는 손은 건조하고 주름이 자글거려 볼품없다. 이 모든 것은 약과다. 아이를 낳고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배둘레햄, 뱃살이다. 나에게 뱃살이란 게 생길 거란 생각은 해본 적 조차 없다. 워낙에 마른 체형이기도 했고, 운동을 좋아하는 탓에 뱃살이 생길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나는 출산 전 입었던 스키니진에 어떻게든 다리를 욱여넣고 있다. 어찌어찌 다리는 넣었지만 엉덩이에 걸린 바지는 더 이상 올라가기를 거부한다. 아이 키우느라 몸고생이 말이 아닌데 살이 빠지는 문제는 고생의 차원과 달랐다. 스키니진과 씨름하느라 팔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머릿속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으니 달달한 것을 넣으라는 신호가 끊임없이 울린다. 초코빵을 반으로 갈라 진득한 초코가 가득 묻은 부분을 한입 배어문다. 늘어진 뱃살만큼 우울함과 한심함이 흘러내린다.

‘여기서 초코빵 하나를 더 먹으면 지는 거야.’ 순간 집 앞 상가에 새로 생긴 필라테스 스튜디오가 떠올랐다. 마트를 오가며 눈여겨보던 곳이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가보리라 생각했었는데 당장 율이를 안고 필라테스 스튜디오로 갔다. 내 팔뚝의 반만큼 가녀린 팔뚝의 강사가 필라테스 수업 스케줄을 설명해주었다. 나무로 만든 기구들, 매트가 깔린 스튜디오를 둘러보는 동안 나의 운동 이력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영, 마라톤, 발레, 필라테스.... 운동하는 시간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땀 흘리는 상쾌한 순간이 떠올라 잠깐 설레기도 했다. 3개월 수업을 등록하고 집으로 왔다. 운동복 온라인 쇼핑몰에서 핑크색 운동복을 구입하며 운동 의지에 불을 붙였다. 남은 건 시간이다. 저녁시간을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남편의 육아지원이 꼭 필요했다. 남편에게 삼인분의 시절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운동하는 시간이 절실하다고 설득했다. 어떻게든 다시 예뻐질 테니 남편도 나도 서로에게 좋은 거라 했다.

준비는 끝났다.


필라테스 스튜디오에는 대여섯 명의 회원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내 자리에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손을 뻗어 허리를 굽혀보았지만 손끝이 무릎에 겨우 닿을 지경이었다. 옆구리를 늘려보았지만 시원한 느낌보다 찢기는 듯한 아픔에 스트레칭을 그만했다. 어디 가서 운동 좀 했다는 얘기는 이제 꺼내기 글렀다 싶었다.


가녀린 팔의 강사가 들어와 수업이 시작되었다. 호흡하는 방법부터 연습하며 천천히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폼롤러로 몸을 풀고, 밸런스 동작을 이어갔다. 복부 근육, 하체 근육을 다양한 동작으로 단련했다. 익숙한 동작들을 만만하게 해낼 수가 없었다. 시종일관 다리가 후들거렸다. 단련하는 근육만 아우성을 치는 게 아니라 온 몸의 손마디까지 근육이 있는 위치라면 모든 곳이 아프고 후들거렸다. 뱃살이 문제가 아니라 내 몸뚱이의 총체적 난관이었다. 겨우 한 시간의 수업을 마무리하며 스트레칭을 했다. 매트에 누워 편하게 숨을 뱉었다. ‘어후, 죽겠다’를 남발했던 수업 끝나니 천국이었다. 이상했다. 몸을 풀었는데 마음이 쭉쭉 늘어난 것 같았다.

이렇게 상쾌하게 누웠다 일어난 게 얼마만이지?


늘 마주했던 육아 스트레스, 집안일, 미래에 대한 걱정 어느 것도 없는 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팔다리가 사정없이 후들거리고 마음도 울렁거렸다. 운동하는 동안 온몸이 쥐포처럼 찢기는 것 같아 미간에 있는 대로 힘을 주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조금 요령을 부려서 내일 아침 일어나도 다리가 부러질 것 같지는 않아 좋았다. 오랜만에 마음이 충만했다.

어제의 미웠던 뱃살이 괜찮았다. 곧 이별할 거니까.

‘이게 얼마만이야?’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나는 것이, 2년 전에 산 바지를 다시 입을 수 있는 것이, 손끝과 발가락이 만나는 것이. 필라테스를 하러 가는 밤마다 앞으로 수없이 중얼거릴 ‘이게 얼마만이야’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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