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차를 인정하고 삽니다

by 우비


“물냉면 하나랑 갈비탕 하나 주세요.”

날씨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점심으로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나는 갈비탕을 남편은 물냉면을 시켰다. 각자의 앞에 놓인 뜨거운 갈비탕과 살얼음이 둥둥 뜬 물냉면을 ‘으어 시원하다’를 반복하며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온도차가 큰 부부다. 생각의 견해차가 아니라 몸의 온도차가 심하다. 더운 여름에도 나는 대부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남편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도 얼음 가득 채운 아이스커피를 마신다. 남편은 겨울을 스키장의 계절이라며 기다리지만 내게는 생각만 해도 발이 시린 스키장보다는 등뼈까지 노곤해지는 찜질방의 계절이다. 나는 늘 손발이 시린데, 남편은 늘 땀이 나 불편하댔다.

이런 우리 부부에게 겨울은 온도차의 비극을 고스란히 겪어야 하는 계절이다. 여름에는 늘 에어컨이 켜져 있어 시원함을 유지한 집이 쾌적했지만 겨울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나는 보일러 온도를 충분히 올려 훈훈하고 따뜻한 공기가 가득한 집이 좋다. 할 수만 있다면 온돌이 절절 끓는 아랫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아궁이에 불을 한가득 땐 할머니 집 안방 아랫목은 그야말로 천국 같은 따뜻함이 있었다. 오래 누워 있으면 엉덩이가 따끈따끈해 오징어처럼 몸을 비비 꼬기도 했지만 그 맛이 좋았다. 남편은 다르다. 한 겨울에도 웬만하면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 오히려 공기가 알싸하게 차가운 것이 좋다고 했다.

결혼 초 처음 맞는 겨울의 어느 밤이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어디선가 한기가 느껴졌다. 신혼집은 오래된 빌라를 개조한 집이라 외풍이 있나 보다 했다. 이불을 한껏 끌어당겨 코 아래까지 덮었다. 그래도 으슬으슬한 공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추운 방에서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서랍에서 양털처럼 두툼한 수면 잠옷과 두꺼운 양말을 찾아 신었다. 따뜻한 잠옷을 입고 누워 겨우 잠이 들었다. 얕은 잠을 얼마나 잤을까 도무지 멈추지 않는 외풍 때문에 잠이 깼다. 옆에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편은 얇은 반바지 잠옷 차림이었다. 춥게 자는 남편이 감기라도 들까 얼른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었다. 이불을 당기는 부스럭거림 때문인지 남편은 잠이 깨 반쯤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추웠지? 미안, 내가 이불을 돌돌 말고 자느라 자기 추웠겠다.”
“아니, 난 창문 열고 자서 좋은데 시원하고. 너 추워?”

밤새 잠을 설치게 한 범인은 외풍이 아닌 남편이 열어놓은 창문이었다. 남편은 한 겨울에도 팬티바람에 창문은 열고 얇은 이불만 덮고 자는 게 좋다고 했다. 뜨끈한 온돌방을 꿈꾸던 나는 난감해졌다. 내일부터는 어떡하지? 창문을 닫으면 남편이 잠을 설칠 것이고 열면 내가 못 잘 것이다. 그렇다고 신혼 초에 각방을 쓰는 것도 싫었다. 소금 장수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엄마의 고민과 다를 바 없었다.

내게 잠은 너무나 소중했다. 기분이 우울한 날 스트레스 해소법도 자는 것이다. 자고 나면 늘 기분이 좋았다. 그런 내가 오늘 밤도 잠을 설친다면 분명 날카로워질 것 같았다. 자칫하면 부부싸움이 예상되는 이슈를 어떻게 넘길지 고민이었다.

‘우리의 온도차를 어떻게 극복할까.’

다시 밤이 되었다. 나는 수면 잠옷에 양말에 여분의 이불까지 겨울바람과 싸울 만만의 준비를 했다. 남편은 지난밤 찬바람이 미안했던지 오늘은 창문을 닫고 자겠다고 했다. 대신 보일러는 틀지 말자고 했다. 추운 방이었지만 바람이 없으면 그래도 견딜만하겠다 생각했다. 이쯤에서 타협을 마치고 잠을 청했다. 예상처럼 추웠다. 차가운 이불속에서 손도 시리고 발도 시렸다. 손발에 온 정신을 집중하느라 잠이 오지 않았다. 갑갑한지 남편도 뒤척거렸다.

“더워? 난 손이 다 시린데.”

시린 손을 남편 배 위에 올려보았다. 따뜻했다. 차가운 발끝도 남편의 종아리 사이에 끼워 넣었다. 핫팩이 따로 없었다. 예상치 못한 따뜻함이었다. 손발이 따뜻하니 잠이 쏟아졌다.

나는 너의 얼음팩, 너는 나의 핫팩. 우리는 천생연분이구나 생각하며 각자의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겨울이 왔구나 느낄 때마다 남편과 나의 다름을 생각하게 된다. 성격도, 식성도, 취향도, 온도차까지 다른 사람의 아내인 나. 비슷한 것보다 다른 것이 백만 개쯤은 많은 사람과 즐겁게 살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우리가 천생연분인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하루하루 찾아낼 수밖에. 말도 안되는 이유들이 쌓여 달라서 불편한 것들이 온전한 너로 인정되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온도차를 인정하게 되는 겨울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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