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엄마는 떠났다
무기력함에 휩싸여 하루종일 누워만 있을 때가 있었다. 우습게도 그런 날조차 배는 고팠다.
냉장고를 열고 반찬을 꺼내다 애써 쌈장을 외면했다. 쌈장 위에는 하얗게 곰팡이가 피었지만 버릴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엄마의 마지막 손길이 묻은 음식이기에 하얀 곰팡이만 걷어내고 있었다.
엄마의 쌈장은 된장 두 숟갈, 고추장 한 숟갈, 다진 마늘 듬뿍, 고춧가루 조금, 참기름 한 바퀴, 설탕 한 꼬집이었다. 쌈장의 단짝은 삶은 양배추였으며 둘은 일요일 아침 단골 메뉴였다. 느지막이 일어나 엄마가 만들어 놓은 음식 대신 라면을 끓였다. 엄마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같이 밥 먹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타박했지만 청개구리처럼 늘 늦게 일어났다. 그땐 가족과 함께 하는 아침 식사는 언제든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라 생각했다.
보츠와나에서 만난 그는 투어 가이드 겸 사장님이었다.
세렝게티에서의 시간은 매운 라면처럼 자극적이었는데, 이곳 오카방코 델타는 슴슴한 누룽지 같은 곳이었다. 세계 최대 내륙 삼각주인 오카방코 델타를, 전통배인 모코로를 타고 강의 곳곳을 떠다니는 게 전부인 투어는 사실 지루했다.
오카방고델타 투어를 시작하기 전, 전통음식점을 추천해 달라는 우리의 물음에 그는 자신의 어머니 집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돼 물었다. 식당이라도 운영하는 건가 싶어 재차 물었지만 아니었다. 보츠와나 집밥이라니 행운이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의 어머니 집 마당에는 의자 네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의자를 더 내오는 것인지, 테이블을 어디서 가지고 와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서성이고 있을 때, 가이드가 다가와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우리 맞은편에 돗자리를 펼치던 그의 어머니가 나와 둘째를 향해 손짓을 했고, 옆에 있던 가이드는 우리에게 설명을 했다. 사실 남자들은 의자에 앉고 여자들은 바닥에 앉는다고. 하지만 너희는 손님이니 의자에 앉아도 된다 했지만 나와 둘째는 바닥으로 내려갔다.
오카방고 델타에서 잡은 생선으로 만든 스튜, 말린 나물로 무친 것 같은 나물무침, 전자레인지에 돌린 떡처럼 찐득한 질감의 매쉬드카사바가 나왔다. 우리 삼 남매와 가이드 부부,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먹기에는 양이 적어 보였지만 음식이 더 준비되어 있는 건지 아닌지 물어볼 수 도 없기에 조금씩만 개인 접시에 담았다. 그들처럼 한 손으로 접시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음식을 뭉쳐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먹는 우리의 모습이 신기한지 자꾸 웃으며 쳐다본다.
그의 여동생이 작은 화로를 가지고 나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구워진 고기 한 점을 받고 있을 때 그의 형이 왔다. 우리와 인사를 나눈 후 그도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식사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 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처음엔 그의 형과 그녀의 아이가, 마지막엔 지나가던 이웃주민까지 자연스럽게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남아 있는 음식들을 서로 나눠 먹었다. 마치 집안에 큰 경사가 생겨 잔치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웃으면서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