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 & 에토샤 국립공원 & 세스림 국립공원
의지와는 상관없이 첫째로 태어난 나는 엄마에게 항상 "네가 잘 돼야 동생들도 잘 되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동생들과 싸울 때면 엄마는 첫째가 돼서 똑같이 싸우고 있다며 나를 더 혼내셨다.
나는 첫째인 게 너무 싫었다.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왜 동생들보다 더 혼나야 하는지, 할 수만 있다면 동생 둘을 오빠 하나와 바꾸고 싶었다.
남매끼리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특별하게 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자신의 형제, 자매와 함께하는 여행을 상상하곤 고개를 세차게 흔들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자녀들이 우리처럼 나중에 함께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우리도 다른 남매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활패턴도 여행하는 스타일도 달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루 종일 24시간 붙어 있으니 정 떨어지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우리가 남들 눈에 우애 있는 남매로 비칠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은 유별나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팠던 그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위로받았다. 엄마가 떠날까 봐 무서웠던 감정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슬픔, 괴로움, 아픔, 모든 게 오롯이 우리 삼 남매의 몫이었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니 셋이 있는 시간이 가장 편했다. 엄마 이야기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웃다가 울어도 이상할 게 없는 그 순간들이 좋았다.
빈트후크에서 렌터카를 픽업하고 스바코프문트로 가는 길, 차량에 문제가 생겼다. 핸들이 심하게 떨렸고 핸들을 똑바로 하면 차가 오른쪽으로 쏠렸다. 다시 돌아가기엔 멀리 온터라 스바코프문트에서 차량을 점검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렌터카에서 알려준 정비소로 갔다. 휠 얼라이먼트에 문제가 생겼지만 수리를 하면 된다고 했다. 골치 아플 정도로 큰 문제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차량을 수리하느라 오전에 타려고 했던 쿼드바이크를 오후로 미뤘다. 수리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일 늦은 시간을 예약했더니, 쿼드바이크를 타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어 사막을 전세 낸 것 같았다.
스바코프문트에서 에토샤 국립공원으로 떠나는 날, 또다시 차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무사히 에토샤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워터홀에는 이미 코끼리 무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모든 걸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는 게임 드라이브를 함께하는 가이드도, 식사를 담당하는 요리사도, 함께 즐기는 여행 동지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뿐이다. 모든 게 어설펐지만 셋이 헤쳐나간다는 사실에 모든 게 즐거웠다.
세스림 국립공원은 나미비아 마지막 일정이자, 아프리카의 마지막 도시였다. 그곳에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서둘러 나왔다. 힘들게 듄 45에 올랐고 떠오르는 해를 마주했다. 새벽 사막은 매우 추웠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옹기종기 모였다.
내 옆에 앉은 동생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엄마에게 고마웠다. 나에게 오빠가 아닌 두 동생을 선물로 남겨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 그리고 내가 힘들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엄마처럼, 내 동생들에게 힘든 시간이 올 때 기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돼야 동생들이 잘 된다'는 엄마의 그 말, 엄마가 없을 때 동생들을 잘 이끌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래서 하셨던 말씀인 것 같다. 엄마를 찾아 여행이 끝나게 되면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수고했다는 그 말을 꼭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