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떠나보낸 이후의 삶
2017년 11월 엄마가 죽어가던 날이었다. 나는 그날따라 수영을 하고 싶었다.
차분하게 일렁이는 물속에 들어가서, 온몸의 힘을 쫙 뺐을 때 저절로 '두둥실-' 떠오르는 그 평안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물속에라도 안정을 찾아 이곳에서의 불안함을 덜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프랑스 ‘리옹’이라는 도시에서 1년 정도 어학연수를 받고 미술대학교 시험 준비를 하며 해외생활에 적응할 듯 말 듯, 느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 아침은 막연한 두려운 감정에 휩싸인 채 잠에서 깨어났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그런 마음에 사로잡힌 그런 날이었다. 집에 계속 가만히 있으면 그 두려움의 크기가 더 커질 것만 같았다.
서둘러 두꺼운 겨울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고 나갈 준비를 마치고 문밖을 나섰다. 찬 바람을 헤치고 수영장에 도착했다. 탈의실에 들어가서 배정받은 짐 보관함에 옷과 가방을 넣고 검은색 원피스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두꺼운 겨울 옷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니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했다. 물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할 생각을 하니까 들뜬 마음이 살짝 올라왔다. 본격적으로 수영장에 들어가려고 하던 찰나에 카카오톡 특유의 밝은 전화 소리가 들렸다.
한국에 사는 친오빠의 전화였다.
-엄마가 돌아가실 것 같아. 너무 위독한 상태여서, 너 지금 한국에 와야 할 것 같은데…
사실 그때 너무 당황해서 오빠의 첫마디가 무엇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대충 엄마의 상태가 위급한 상황을 전달받고 통화버튼 종료를 눌렀다. ‘엄마의 죽음’은 나의 유학 계획에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일이다.) 수영장 탈의실에서 헐벗은 상태로 나는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했다. ‘일어나면 안 될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 같다’라는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멍하니 수영장 입구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수영을 할 수 없겠네…’ 생각하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우선 입고 왔던 두꺼운 옷들을 다시 주섬주섬 꺼내 입었다. 그날 그렇게 물속에서라도 안정을 찾고 싶었던 나의 바람을 이룰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찬바람이 휘휘 불었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기보단 우선 ‘이제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사실 그때 나는 엄마가 ‘폐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나서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엄마를 간호를 하는 시간을 갖게 될 거라 어렴풋이 앞으로 내 인생에 방향에 대해서 예상했었다. 엄마가 언제까지 아플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 삶에 일시정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간다면 엄마도 더 돌보고 사랑한다고 말 많이 해줄 계획이었다. 슬프겠지만 엄마의 임종을 ‘당연히’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빠에게 연락을 받은 그날 밤, 엄마는 아빠의 곁에서 마지막 깊은숨을 몰아 내쉬고 고요히 임종을 맞이했다. 엄마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영원한 이별이 시작되었다. 그날 나는 ‘살아있는' 엄마가 없는, '죽은 엄마'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 비행기 안에서 느끼는 죄 절감과 허망함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최대한 빠른 비행기로 한국에 갔지만 장례식 이틀째가 돼서야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엄마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2017년 그날 이후, 엄마가 죽은 이후로 나는 매해마다 새해가 밝아도 늘 2017년을 살았던 것 같다.
‘시간이 약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격언들을 참 싫어하면서도, 이 말들의 힘을 아주 조금은 믿었다. 그 말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과 함께 나는 서서히 촛불이 녹아내리 듯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죽음을 통해 깨달은 삶의 유한성과 실존의 허무로 인한 무기력과 절망적인 감정은. ‘도대체 왜 삶을 살아가는 거지?’라는 끝이 없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당시 나는 겨우 정신 줄을 잡고 준비하던 학교 시험을 보고 약간의 패닉 상태로 정신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사실 학교생활이 엉망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그저 나는 계속되는 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간신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2020년에 아빠마저도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나는 또다시 '죽은 아빠'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가야 했고 엄마의 장례식 때처럼, 아빠의 장례식장에도 이틀째에 도착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도 역시 아빠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보냈다.
두 번의 장례식 치른 이후부터, 부모님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잘 정리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우울한 감정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무럭무럭 자라났다. 내 머릿속 정신 줄을 잡기 위해 잘 조여져 있던 나사가 서서히 느슨하게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죄책감이 뒤섞인 자기혐오적인 생각에 지배당할 때도 많았다. 자식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감정과 깊은 ‘상실감’을 도대체 떨쳐 보낼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내면은 원자폭탄이 터진 땅처럼 황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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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 채식좌 미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