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삶의 일시정지

부모님의 죽음 그 이후 애도의 시간

by 미엘라


아빠가 죽은 이후에도 나의 삶은 매정하게도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나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쌩때티엔'의 살고 있던 집으로 돌아와서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를 지속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힘들어도 내 삶은 계속되니까, 그 계속되는 내 삶에 책임을 지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예전처럼,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상실을 몰랐던 그때의 ‘나’와 그 이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저 삶이라는 것이 죽음을 향해가는 ‘여정’으로만 느껴져서 매일매일이 상당히 허무했다. 거의 모든 것에 흥미가 떨어졌고 내가 만나는 모든 관계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고 싶었던 불어공부도, 학교생활도, 새로운 만남도 그 어떤 것도 즐거움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운이 좋아서 미술학교에 합격한 케이스다 보니 실력, 재능이 턱없이 부족해서 정말 많이 노력해야 해야만 하는 포지션이었다. 한국에서 살 때보다 더 노력해서 살아도 모자랄 판에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좌절한 상태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 시기에 만난 좋은 기회와 좋은 사람들을 많이 잃었다. 지난 몇 년간은 모든 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딱 절반도 안 되는, 겨우 상황을 모면할 정도의 노력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사람을 만나지 않았고 나의 내면에서 요구하는 끝도 없는 휴식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서 보냈다.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똑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우울증은 내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매우 많이 방해했다. 하루를 살아가는데 지장이 수도 없이 너무 많았다. 어떤 날은 우울한 기분이 지나쳐서 하루 종일 우느라 진을 다 뺐고,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그냥 어느 공간에 늘 있는 ‘죽은’ 사물처럼 그저 ‘가만히’ 있을 때가 많았다. 살아 있는 것이 고통으만 느껴지고 이 세상에 원래 내가 없었던 것처럼 '나'를 사라지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반짝 반짝이던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고, 계속 혼자 있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극복을 잘하지 못하고 점점 더 작아졌다.

부모님의 죽음을 통해 ‘한 사람’의 죽음이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배웠다. 단순히 육체가 소멸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 이후에는 수많은 이별이 그 뒤를 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추억들을 더 이상 공유할 수 없고,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작은 의문들을 더 이상 부모님에게 하나하나 물어볼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가령, '어린 시절 사진' 속에서 내가 '왜 울고 있는지' 그 이유를 더 이상 물어볼 사람이 없고,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엄마만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의 정확한 용도도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어떤 날에는 엄마, 아빠의 물건들과 사진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도 있었다. ‘부모님과 나’ 둘만의 기억의 접점에 ‘죽음’이라는 지울 수 없는 굵은 선이 그어져 버렸다. 혼자서만 과거 속에 머물러야 하는 저주 빠진 것 같았다. 함께 보낸 시간을 기억하는 상대의 소멸은 나의 소멸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렇게 부모님의 부재로 인해 생겨난 마음속 빈자리를 ‘우울’이 서서히 메우고 있었다.

슬픔이 끝없이 비같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고, 상실의 고통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또 다른 삶의 고통이었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이런 슬픔을 겪어보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가 느끼는 슬픔 속에서 오롯이 혼자 있고 싶었다. 내가 슬퍼하는 만큼 죽은 부모님에게 다가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학교, 아르바이트에 관련된 사람을 제외하고 졸업할 때까지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는 고립된 생활을 3년 정도 보냈다. 모든 연락과 초대를 다 거절, 거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나를 사라지게 하면 나는 완벽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어떻게 죽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은 한편으로 즐겁기도 했고 마음이 편안하기도 했다.




◇ 인스타 @miella_page

◇ 유튜브 : 미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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