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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l 17. 2024

보통의 별이 되고픈 나의 특별한 별

나는 어떤 별을 꿈꿨을까?


부끄러운 고백부터 시작하자면, 나는 별이가 아들이기를 바랐다. 요즘 시대에 웬 아들타령이야 하겠지만, 남편이 누나 셋에 외아들인지라 시아버지께 떡하니 첫 손자를 안겨드려 싶었다. 8개월 무렵 핑크색 옷을 준비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야속했다.  순간만큼은 대학에 똑떨어진 수험생 된 기분이었다. 나의 표정을 살피신 건지 나를 달래듯이 한마디 해주신다.


"아기 다리가 아주 기네요"


'롱다리 별' 탄생이 예고되었다. 롱다리 DNA남편에게는 없고, 나에게만 있는 유전자 아니던가. 우리 부부는 평균의 IQ, 북방계 특유의 무쌍 얼굴, 중간보다 약간 큰 키를 가진 보통의 한국인이다. 그나마 나는 다리가 길고, 허리가 짧아 서구인의 체형을 가졌으니, 조물주께서 딱 하나, 별이에게 물려줄 DNA를 물으시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롱다리 DNA'를 주십사 했을 것이다.

낳고 보니 진짜 길었다. 배냇저고리 사이로 다리를 버둥버둥거릴 때면 별이의 긴 다리가 신통방통했다. 어디 그뿐인가, 손가락은 또 얼마나 길쭉길쭉한지 어쩌면 남편과 나의 조합에서 뽑아낼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낳았구나 싶었다. 똥 색깔까지도 어찌나 고은지, 매일 별은 개나리꽃 같은 노란 똥을 쌌다.


첫 월급을 타자마자 39만 원짜리 전집을 질렀다. 결혼과 동시에 합가를 했기에 별은 시어머니께 맡기고 출산 후 한 달 만에 회사에 복귀했었다. 아직 고개도 못 가누는 아기한테 전집부터 들여놓은 며느리가 시어머니는 마땅치 않으셨겠지만, 똑똑하게 키워보겠다는데 내심 흐뭇하신 모양이다.  


별이에 대한 나의 계획은 야심 찼다. 일단 4살까지는 전원에서 산다.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 하니, 서울로 이사를 간다. 기왕이면 잠실,  안 되면 고덕동이라도 가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배우 이영애 씨도 어릴 때는 양평에서 쌍둥이를 키웠으니, 계획만큼은 상당히 앞서나갔던 셈이다. 분유도 바꿨다. 국산 우유에서 1.5배나 비싼 미국산 씨밀락으로. 모유수유를 하지 못하는 미안함도 있겠지만, 두뇌활성화에도 좋다니까, 그리고 미국 거니깐, 아무렴 낫겠지 싶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새끼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그냥 보통의 엄마였다.


그런 보통 엄마의 꿈이 처음으로 무너진 것은 별이가 생후 3개월에 뇌수막염에 걸렸을 때였다. 퇴원 무렵 소아과 과장님은 별이가 장애를 가질 확률이 높다고 하셨다. 화장실 맨 끝칸에서 울고, 매일매일 순간순간 울음이 나왔지만, 사실 그 말을 100% 다 믿지 않았다. 내가 건강하게 키워서 그 진단이 틀렸음을 보여주겠다고 가슴속에 칼자루 하나를 품었다.


그러나 틀린 건 역시 내 쪽이었다. 육아책에서 본 아이 발육 상태와 우리 별이의 발육 성장 속도는 너무 달랐다. 백일 무렵에 가누어야 할 목, 배밀이, 네 발기기, 혼자 일어나 앉기, 그 어느 것 하나도 또래와 비슷하게 하는 것이 없었다. 애가 늦되는 거라며 너무 걱정 말라던 시어머니도 어느 날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애를 여럿 키워봤지만 우리 별이는 이상한 것 같다고 했다. 큰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아산병원에 가서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시어머니까지 어른 3명이 갔다. 다행히도 유전학적으로 이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발달이 정상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우선 24개월까지는 특별한 치료가 없으니, 지금처럼 키우라고 하셨다. 병원 문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팔다리가 우월한 DNA를 가진 나의 첫 별, 나와 남편이 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유전자를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 욕심이었을까?


보통의 가정에서, 보통의 성적으로, 보통의 대학에 진학에서 보통 남자와 결혼해서 사는 나는 보통이라는 것은 그냥 삶의 디폴트값 같은 것이었다. 그런 보통은 누구나 노력하면 얻어낼 수 있는 결과 아니었던가? 그러기에 내가 바라왔던 아이는 보통이 아닌 보통 이상의 아이였던 것이다.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오늘의 나에게 예쁜 옷 한 벌을 선물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별을 보통 이상의 아이로 자라나게 하기 위해 물질적 지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적이 달라졌다.


그토록 내가 하찮게 여겼던 보통의 기준이, 우리 별이에게는 너무나도 간절한 기준이 되었다.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한의원이 있다기에 찾아갔다.

한약을 먹였다. 먹이면 바로 혀를 내밀어 뱉어냈다.

이게 얼마짜린데, 이게 너를 보통의 아가로 만들어 줄 거란 말이야

강제로 입을 벌렸지만 사약을 먹이는 거 같아 그만두었다.

누구는 머리에 침을 맞고 걸었다고 해서 주 2회 침을 맞으러 다녔다.

작은 머리에 수십 개의 침을 꽂으면 아이는 자지러지듯 울어댔다.

이러다 애 잡겠다. 친정 엄마가 그만하자고 하셨다.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위한 놀이 센터가 강남에 있다고 했다.

강남역 지하상가의 인파에 놀란 별은 약한 경기처럼 몸을 떨었다.


간절한 노력에도 우리 별이는 보통의 별이 되지 못했다. 


만일 시간을 돌려, 조물주께서 딱 하나 별이에게 물려줄 DNA를 다시 물으시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보통의 DNA, 보통의 아이'를 주십사 했을 것이다. 보통이 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님을 별이는 나에게 깨우쳐주었다. 


그리고 별은 점점 보통이 아닌 특별한 별이 되어갔다.





Epilog


긴 호흡이 필요한 연재를 시작하려니, 고민이 깊어졌다. 혹시라도 별과 나의 지난날이 신파처럼 비치지는 않을지, 장애를 키우고 있는 가족들의 고통을 담아내기에 부족하지 않을지, 별이를 키우며 행복했던 시간들을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심리상담가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고민을 듣더니 친구가 묻는다. 너는 별이의 글로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지를. 나는 칭찬받고 싶다고 답했다.


나는 지금 칭찬이 고픈 어린아이 같다. 밝고 건강한 수다쟁이 아가씨로 키워낸 엄마로서의 나를, 장애를 키우면서 자신을 놓치지 않았던 나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 며느리로서의 나를, 그 정도면 대견했노라고 나를 모르는 타인에게 칭찬받고 싶다. 어쩌면 나의 글은 인정받고 싶어서 자신을 끊임없이 어필하는 신입사원, 아니 장애를 가진 언니 대신 칭찬받는 아이로 자라려고 애쓴 둘째의 12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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