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받으려고 해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땐,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을. 다른 이의 마음이 아무리 진심이라고 해도, 나를 생각해서 건네는 손길이라고 해도 그 어떤 무엇도, 그 시간의 나를 건져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산산조각 난 마음은 알 수 없는 세계에 내동댕이쳐졌고, 돌아오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마음은, 오랫동안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올라올 생각도, 돌아올 생각도 없어 보였다. 웅크리고 웅크려서 요가에서 말하는 ‘아기 자세’인 상태로, 몸을 잔뜩 작게 말아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선, 눈을 감은 채로.
나는 그 마음을 그대로 놓아주고 싶었다.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은 그 상태의 나에겐 무언의 폭력이었다. 그저 나를 해하지 않는 상태로 가만히 내버려 둬야 했다.
위로하려는 마음은 선의 아닌가? 생각했었다.
필요한 일이라고도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상대의 마음 컨디션은 고려하지도 않고, 내 마음 편하자고 어쭙잖게 위로하려 하진 않았나.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그냥 옆에 있어주고, 묵묵히 곁을 지켜줄걸, 가만히 있을 걸. 위로한답시고 더 큰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잘 알지도 모르면서 다 안다는 듯, 건방진 태도를 보이진 않았는지 후회가 됐다. 내 마음이 진심이라면 다 수용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오만이고 오산이었다. 그건 고작 나의 마음일 뿐이었다. 상대의 마음이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의 감정은 ‘진심’에도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위로의 형태라고 할지라도 약간의 흔들림조차 원치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아직 그들에게 일어난 일에 현실감이 없다. 그걸 알아차리는 건 당사자여야 한다.
위로를 받기 위해서도 최소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마음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러려면 우선은 기다려주고 믿어줘야 한다는 것을 예전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위로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상대가 입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을 때, 먼저 이야기를 들어줘라. 함께 그 시간을 보내줘라. 찾아가서 당신의 편이 옆에 있다는 것을, 언제든 손 내밀면 잡아줄 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줘라. 질문이나 조언은 필요하지 않다. 진정한 위로는 상대가 진짜 필요로 할 때, 대화할 준비가 됐을 때 그때여야만 가능하다.
그러니 아직은 위로하지 말 것.
그냥 기다려줄 것.
따뜻하게 손잡아 줄 것.
같이 울어 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