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주문해 둔 신선한 원두가 도착했다. 새 원두를 꺼내 갈아 마실 때의 찰나의 즐거움은 내 현재 일상의 즐거움 중 가장 큰 기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꽤 기분도 상쾌하고 원두도 도착해서 기분이 좋았다. 커피 머신으로 압착해서 내릴까? 고민하다 그래, 오늘은 핸드드립이다! 싶었다. 그게 새 원두에 대한 예의지~라고 결론을 내리고 수동그라인더에 원두를 무심히 담고, 툭툭 갈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따라 이놈의 원두가 잘 갈리지가 않는 것이다. 원래도 쉽게 갈리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손잡이가 자꾸 빠지고, 양도 쉽게 늘질 않았다. 제기랄. 별 게 다 초를 치네. 이럴 때 힘이 장사인 그가 있었다면, 땀을 삐질거리며 화를 내고 있는 내 손에서 그라인더를 뺏어 5초 만에 다 갈아줬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또 왜 드는 것인가.
그는 이제 내 곁에 없는데... 그를 애도하기 위해 이렇게 고심하고 애쓰고 있는데... 괜찮다고 생각한 몇 안 되는 오늘 같은 날, 하필이면 원두가 또 말썽이다. 난 또 울기 싫어 애써 생각나는 기억들을 지운다.
이렇게 그를 상기시키는 기억들은 너무 예측이 안되는 데다 너무 일상적이다.
어제는 벼르고 벼르던 앙드레 브라질리에 전시회에 갔다가 그가 부린 색채의 마법과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내가 사랑했던 제주를 닮은 그 그림들이 눈앞에 펼쳐져서 마음이 아렸다. 집에 오자마자 홀린 듯 마음대로 그림을 그렸고, 감정을 담았다. 제주노을의 애틋함을 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