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숨의시간 08화

상실이 가져온 것들

by 잔별

연휴의 끝, 어김없이 커피 한 잔을 내리고 하루를 시작했다. 프리랜서인 나는 연휴의 루틴도 사실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들과 모임을 마무리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오늘은 더더욱 그렇다.


작년 5월 이후, 나는 행복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그렇다) 커피를 내리는 시간만큼은 온전한 행복을 60초쯤 음미할 수 있다. 맛있는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고 나면, 엔도르핀이 솟아나는 기분이다.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잠깐의 시간일지라도 매우 귀하고 아깝게 느껴진다. 이 시간 역시 지나가는 순간 중의 일부일 뿐이니까.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지금은 그래서 크게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하루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어제는 TV 설날 특선 방영 '카시오페아'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30대 중반의 여자 변호사, 수진(서현진)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일상을 잃어가고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였다.


나는 또 이 영화의 스토리가 왜 그렇게 아픈지, 그만 울고 말았다.


큰 상실을 겪은 자라면, 누구나 남의 상실에도 깊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선이 생기는 것 같다. 나의 아픔이 크고 힘든 만큼 남의 아픔이나 상실 역시도 내 일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왜 인간에겐 불행이나 상실이 오는 걸까'에 대한 아주 원초적이고 철학적인 고민부터, '그들이 좀 덜 아팠으면 좋겠다'라고 빌게 되는 순전한 마음까지... 심장 한 구석에서 퐁- 솟아난다.


'남의 아픔은 남의 아픔'으로 여기던 철없던 날들이 조금은 그리웠다. 나는 그런 아픔 따윈 모르는 인간이고 싶었다. 행복만 얘기하기에도 인생은 짧고, 불행이나 상실을 크게 느끼지 않고도 평온한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왜 나는 이렇게 아픔이나 상실에 민감한 사람이 되고 만 걸까.


상실은 내게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남겨주었지만, 그래서 나는 어떤 날은 더 아프고, 조금은 더 슬픈 날을 보내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이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 과정을 지나는 중인 지금은 아직 좀 힘들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내고 소화시켜 내기가 어렵다.


상실 뒤 남겨진 자들의 세계는 그래서 더욱 존중받아야 하고, 더욱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누구든 쉽게 공감하려 들거나,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어떤 민감함을 용납해 줄 것. 지금 바라는 건 그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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