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 빠져 든 것이 ‘우울증’의 한 증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깊은 잠에 빠져 아무 생각도 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방어막을 친 나는 외부와의 관계에서도 철저하게 방어막을 쳤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동물들의 모습처럼, 몸을 바짝 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했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연락을 끊고, 잠수모드에 들어간 것이다.
예전에 나는 '잠수'를 타는 인간들을 극혐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편이었다. '잠수'= '단절 소통'은 자기 속 편하자고 다른 사람은 전혀 배려도 하지 않는 것이라며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 어떤 상황에서건(연락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잠수를 타는 행위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일이며,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잠수를 타거나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리는 이들 중 상당수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방송 일을 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연락 한 통 없이 ‘잠수’라는 방식으로 일을 그만두는 막내작가 때문에 고생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또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싫거나 곤란할 때면 습관적으로 연락을 피하고 나중에 아무 설명도 없이 나타나는 유형의 친구도 있었다. 또한 주변에서는 잠수 이별을 당하거나 잠수 사기를 당한 지인들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을 볼 때마다 마음고생을 하는 건 언제나 남겨진 사람 쪽이었다.
상대방이 걱정할 거란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는 건가?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일방적이지?
저래놓고 멀쩡하게 나타나기만 해 봐라~
종종 ‘잠수’라는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일정 기간 차단을 당하게 되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처음에는 걱정도 됐다가 화가 났다가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가는 결국 체념. '힘든 건 알겠는데, 꼭 이렇게 까지 해야겠냐.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이렇게 잠수 극혐자인 내가 '잠수'라는 방식으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있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지도, 오는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나를 걱정하는 친구들로부터 계속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다 설명할 자신도, 조금의 여력도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되는 연락을 다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간신히 힘을 내서 문자들에 답장을 했다. ‘지금은 연락하기가 곤란한 상황이고 내가 많이 힘든 일을 겪어 시간이 필요하니 나중에 연락하겠다.’라고.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였다. 일방적 통보 후 긴 잠수, 긴 단절에 들어갔다. 외부와의 소통뿐 아니라, 나와의 소통에서도 먹통이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당시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2022년 7월부터 주기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다녔는데, 당시에 선생님께 이런 고민을 자주 털어놨다. 일방적인 나의 방식에서 스스로도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 것이다.
"선생님, 저는 잠수 타는 방식으로 연락하지 않는 걸 싫어하는데,
지금 제가 그러고 있어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요."
"친구들에게 빨리 연락을 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지금은 잔별님, 마음 편한 대로 하셔야 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해요"
"어떤 날은 일어나자마자 욕이 나오고,
평소엔 하지 않던 욕을 하루 종일 하는 때도 있어요."
"음~시원하게 욕 하세요. 뭐 어떻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욕을 할 수도 있지요."
"계속 잠수를 타도 괜찮을까요? 대체 제가 왜 이러는 걸까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그러신 거예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요.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눈물....)"
"그분들도 나중에 잔별님의 힘든 사정을 알게 되면 다 이해해 주실 거예요.
지금은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하세요. 그게 우선입니다."
"네, 그래볼게요."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게조차 상처받고 싶지 않아 무작정 숨어버린 나. 그런 나를 위로한 말 한마디는 바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그러신 거예요."였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선, 의도 없는 말도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 마음이 아픈 나는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두세 달이 지나서야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가끔 안부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수십 년 사용하던 휴대폰을 정리하고 연락처의 인원을 확 줄이면서 남은 사람들에게. 이 관계는 부디 잘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길고 긴 잠수가 끝나고 나면, 수면 위로 혼자 올라올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완전한 치유란 가능할까.
2022년이 지나가고 있다. 꽁꽁 언 날씨처럼 심장의 중심부는 아직도 그대로 얼어있다. 우울 속으로 깊게 침잠했지만, 이 시간들이 나를 위한 쓸모 있는 시간이었기를 기도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잔뜩 웅크린 마음들에게, 조금은 다정하게 손 내밀어 보고 싶다. 누군가의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