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한 결혼

by 은해


누구세요?

원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옆에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자가 새삼 낯설다. 처음부터 나의 가족은 아니었던 사람이다. 잠시 잠깐 나에게 홀려서 결혼식장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온 그 남자가 오늘도 내 옆에서 자고 있다. 아침이면 내가 차려 주는 밥을 먹고 서둘러 출근을 한다. 저녁이면 어김없이 퇴근을 해서 돌아온다. 내가 현관으로 뛰어나가 반겨주지 않으면 무언가 서운한지 내 이름을 불러댄다. 어디 있어? 나, 왔어. 배가 고프다고 밥을 달라고 재촉이다. 나한테 평생 먹을 밥을 맡겨놓은 사람처럼 언제나 밥을 내놓으라고 보채는 그 남자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그 남자와 내가 만나서 ‘부부’가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이었던 그 남자에게 33년째 밥을 차려주고 있는 내 모습에 나도 한 번씩 놀란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잘 알지도 못했던 낯선 남자에게 밥을 차려주느라 흘러가버린 그 세월이 아까워서 더러는 아무 이유도 없이 눈을 흘긴다. 어쩌다 보니 한 결혼인데 결혼식장에서 했던 그 혼인서약을 잊지 않고 오늘도 충실히 내 자리를 지킨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샤워까지 하고 그 남자의 옆자리에 누워 잠을 청한다.


“저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찻잔을 든 그 남자의 손에 세밀한 떨림이 있는 것을 보았다. 서른이면 노총각 소리를 듣던 그 시절에 서른 고개를 깔딱이며 넘어가고 있던 그 남자는 결혼이 급했던 것일까. 아니면 앞에 앉은 맞선 상대가 도와달라고 사정할 만큼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그 남자는 찻잔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릴 정도로 긴장하며 자기를 좀 도와주어야겠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우긴다.

내가 워낙에 착해서 불우이웃 돕기 차원에서 결혼해 준 것이라고.


우리의 맞선 자리는 고스톱 판에서 성사되었다.

내가 지금 잘 알지도 못했던 남자의 밥을 삼십 년이 넘도록 해주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는 어느 날 알지도 못하는 아주머니와 고스톱을 치고 있었단다. 사촌 여동생 집에 다니러 온 그 아주머니와 그 낯선 아주머니의 사촌 여동생인 우리 옆집 아주머니와 어울려 고스톱을 치던 중에 그 낯선 아주머니가 난데없이 중신을 서달라고 졸랐다는 것이다. 서른 먹은 아들이 있다고. 어머니는 나이 찬 딸을 시집 못 보내서 애를 태우는 한 친구 생각이 나서 중신을 서주겠다고 했단다. 그때 옆집 아주머니가 이 집에도 딸이 있지 않느냐며 어머니를 붙잡고 늘어지더니 일방적으로 맞선 날을 잡아버렸다는 것이다.

두 달 보름 후에 우리는 행복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 낯선 아주머니는 나의 시어머니가 되었다.


정말 어쩌다 보니 한 결혼이다.


우연이 필연이 되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종종 낯설게 느껴지던 그 남자가 출장이라도 가는 날은 왜 그렇게 허전한지 잠이 오지 않는다.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면 저녁 반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하면서도 그가 돌아오면 무얼 먹었는지 제대로 먹기나 한 것인지 기어코 확인을 하고서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저녁상을 보는 일이 더러는 힘들기도 하지만 요것조것 차려서 제대로 먹이고 나서야 내 배가 불러진다.

어쩌다 보니 한 결혼치고는 너무 애틋하다.


그 남자도 어쩌다 보니 결혼한 ‘아내’라는 이름의 그 여자에게 한결같이 충실하다. 좋은 곳을 다녀오면 꼭 같이 가보자며 그 여자를 재촉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면 다음에 꼭 같이 가서 그 여자를 먹인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좋은 것을 보면 ‘아내’라는 이름의 그 여자 생각이 난단다.


지금 생각하면 선을 보고 두 달 보름 만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무엇에 이끌려 그런 용기 있는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우리 자신들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다 보니 한 결혼이었다고 말하며 웃을 뿐이다.

우연한 인연인지 필연한 인연인지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어쩌다 보니 결혼했으면 어떤가.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이제 서로에게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the one)가 되었다.


그 날 나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고스톱을 같이 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단 말인가.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