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연 만나야 할 텐데.
미혼으로 친정에서 지낼 때 어른들이 해주던 말이다. 고이 키운 딸이 그리고 손녀가 좋은 인연 만나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번 씩 툭 던져주던 이야기다. 그렇다면 인연에는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이 있다는 말이 된다.
좋은 인연이란 어떤 인연을 말하는 것일까.
결국은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뜻이 아닐까. 아니, 좋은 인연이란 그저 좋은 사람 만나라는 말보다는 조금 더 깊은 뜻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인연’이라는 말에는 얼마간 운명론적인 느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인연’이라고 하면 언젠가는 꼭 나와 만나게 되어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그 사람과 나에게 부부 인연이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을 지금은 못 만나고 있더라도 언젠가 연이 닿으면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가 깔려있다.
아무리 연애를 오래 해도 두 사람이 부부연이 없으면 헤어지게 된다는 말이 있다. 또 설사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서로 맞지 않아 헤어지고 나면 어른들은 그 두 사람이 부부연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연’이라는 말은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제 멋대로 써도 좋은 말인가.
결혼해서 둘이 잘 살면 부부연이 튼튼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못 살고 헤어지면 부부연이 원래 없었던 것이라고 위로하면 되는 일이다. 인연이 아니었는데 어쩔 것인가. 어차피 인연이 아니었던 사람과는 잘 헤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네 잘못이 아니라 다 인연이 아니라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위안을 삼으면 빨리 체념하고 마음을 정리하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어쩌면 ‘인연’이라는 말은 곡절 많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우연히 만나게 되어 결혼한 남편이나 아내도 ‘아, 저 사람이 나의 인연이었구나. 아니, 필연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면 왠지 그 상대가 내 운명의 남자요, 내 운명의 여자인 것만 같아서 어떤 감동 같은 것이 밀려온다. 상대를 향한 정이 더 깊어지고 애절해지는 것을 느낀다. 지나간 시간 속에 내 인생 무대에 등장했던 남자나 여자들은 다 스쳐가는 인연이었을 뿐이고 지금 내 곁에 누워 자고 있는 저 남자가, 지금 내 자식들을 낳아준 저 여자가 나의 필연이라고 생각해보라. 부부 사이가 한결 더 돈독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에 눈물이 다 찔끔 날 수도 있다. 그 사람과의 숭고한 인연의 끈을 더 단단히 잡아야겠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더러는 ‘악연’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지긋지긋한 인연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인연을 끊고 싶다.’고 생각한다. 과연 인연의 고리는 맺고 싶다면 맺고, 끊고 싶다고 하면 끊어질 수 있는 것인가. 살면서 나에게 손해만 끼치는 사람, 끊임없이 계속해서 나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 나에게 상처만 남기고 떠나버린 사람 같은 달갑지 않은 인연은 어떻게 할 것인가. 끊고 싶다고 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 인연이다. 나와는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체념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런 인연은 시간의 강물에 흘려보내자. 흐르는 강물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그런 나쁜 인연들은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멀리멀리 저 먼바다로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다 내가 만든다는 말도 있다.
‘인연’이라는 말에는 운명적인 요소가 분명히 들어있지만, 그 운명의 물줄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일까. 그 알 수 없는 힘은 신(神)만이 가진 것일까. 우리 인간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나 신들이 너무 바빠서 우리 인간이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도록 우리의 유전자 속에 그런 알 수 없는 힘을 심어 놓은 것은 아닐까.
누구든지 좋은 인연 만나기를 기다리겠지만 나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연이 되어 줘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힘으로 물길을 돌려서 홍수 같은 자연 재난을 막아보려고 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좋은 인연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떨까.
오늘을 살면서 만나게 될 많은 인연들을 좋은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좋은 인연이 되어주기 위해서 애써보리라. 더구나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두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좋은 인연이 되어주기 위해 애쓰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다보면 그 상대방도 나에게 좋은 인연으로 다가오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