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기다리는 일입니다

by 은해

우리가 산다는 것은 기다리는 일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아기가 생기기를 기다립니다. 임신을 하고 나면 한 달, 두 달 날짜를 세어가며 출산을 기다립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백일을 기다리고, 뒤집기 하기를 기다리고, 혼자 일어나 앉기를 기다리고, 걷기를 기다리고, 또 말문이 언제 터질까 기다립니다.

두 돌 때쯤 지나서 요런조런 말을 하기 시작하면 어서 커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기를 기다리고, 더 크면 초등학교에 가기를 기다립니다. 초등학교에 보내 놓고 나면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으니 얼른 자라서 중학생이 되기를 기다리지요. 그러다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입시지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니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그 날부터 대학생이 될 날을 기다립니다. 대학생이 되면 남자아이의 경우는 군대에 가야 하고 훈련소에 데려다준 그 날부터 제대해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나면 언제쯤 꽃같이 예쁜 여자 친구 하나 데려올까 기다리게 되고 졸업이 가까워오기도 전에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기다립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학원 보내고, 어학연수 보내고 갖은 고생 끝에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나면 좋을 배필 만나서 결혼해야 할 텐데 라는 걱정으로 며느리 볼 날을 기다립니다. 연애라도 열심히 해서 색시 감을 데려오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여기저기 중매 부탁이라도 해서 자식을 결혼시킵니다. 결혼을 시켰다고 해서 기다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부터 또다시 손자가 태어나기를 기다립니다. 그 손자가 태어나면 우리는 또 자식을 키울 때처럼 똑같은 기다림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기다립니다.


아침에 출근시킨 그가 퇴근해서 돌아올 시간을 기다립니다. 첫 번째 부부 싸움을 기억합니다. 신혼 초라서 그랬는지 늘 여섯 시 반이면 돌아오던 남편이 일곱 시가 지나서야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싸웠었지요. 그때부터 매일매일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후로는 열 시에도 들어오고 열두 시에도 들어오지만 언제나 그를 기다립니다. 수 십 년을 기다리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 기다리는 일에는 이력이 붙었습니다. 웬만해서는 늦게 돌아왔다고 화를 내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오븐에 넣어둔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고, 며칠 전에 담가 둔 김치가 익기를 기다리고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전셋집으로 시작했던 결혼생활도 기다림의 시작이었습니다. 열심히 저축해서 내 집 마련할 날을 기다립니다. 부지런히 적금을 부어서 작은 아파트 하나 장만합니다. 그때부터는 그 아파트에 끼어있는 대출금을 갚느라고 또 기다립니다. 빚이 없어지는 그 날을. 그 빚을 다 갚게 되는 날 또 새로운 꿈을 꾸게 되지요.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야 하니까요. 그때부터는 더 큰 집으로 이사할 날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며 살다가 어느 날 결심하게 되지요. 아파트는 답답해서 싫다고. 전원주택으로 이사해야겠다고. 이제 경관이 아름답고, 풍수까지 좋고, 건강에도 좋고, 텃밭도 가꿀 수 있고, 조용한 전원주택으로 이사 갈 날을 기다리며 삽니다.

결혼해서 산다는 것은 이렇게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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