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전기는 다 어디 갔을까

by 은해


‘미치겠다. 뭐 좀 재미있는 일 없나?’

하나같이 따분한 얼굴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중년의 여자들이 모였다. 언제는 좋아서 죽겠다며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했던 친구가 이제는 그 남자가 지겨워 미치겠다며 있는 흉 없는 흉을 다 보고 있다. 밥을 먹고 노래방을 가서 노래 부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이제는 일 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가는 여행계를 만들자고 나선다. 제주도로 가자는 한 친구의 말에 제주도가 뭐냐고 해외로 나르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내 여행으로 채우기에는 중년에 찾아온 허전함의 크기가 너무 큰 것은 아닐까.

다 그놈의 전력난 때문이다.

‘손 좀 치워요. 더워 죽겠는데........’

유난히 열이 많은 체질을 가진 그가 팔이라도 잡으면 더운 날 더 더워진다. 손을 잡고 걸어도 손바닥에 땀만 나고 아무 느낌이 없다. 다리를 베고 누워도 베개의 기능 이상의 것이 느껴지지 않으니 어떻게 된 걸까.

‘Touch and be touched!’라는 광고 문구가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서로 터치를 해도 터치를 당해도 별 느낌이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드디어 결혼 30년에 부부 일심동체의 경지에 다다른 것일까.


선을 보고 두 달 보름 만에 결혼을 했다.

서로 손 끝만 닿아도 말 그대로 ‘찌릿찌릿’ 전기가 통했었다. 아니 심지어는 서로 터치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아도 마구마구 전기가 생산되었다. 길 가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시끄러운지도 모르고 살았다. 경제적으로 늘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어려운지도 모르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이 그 많던 전기의 힘이 아니었을까. 발전소를 따로 돌리지 않아도 저절로 생산되던 그 엄청난 양의 전기를 어떻게 할지 몰라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정신이 나갔던 것은 아닐까.

아! 그 많던 전기는 다 어디 갔을까.

언젠가부터 전력난이 찾아왔다.

원자력 발전소 관련자들의 비리로 적합하지 않은 부품이 사용되어서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급기야는 가동을 멈추는 곳이 점점 늘어났다. 전기 절약 캠페인을 하고 문을 열어 놓고 냉방기를 돌리는 점포를 단속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본격적인 더위로 냉방기 사용이 늘어나자 전력 경보 ‘관심’ 단계가 발령되기도 했다. 전력난이 심해지면 경보 발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블랙아웃 사태를 막아야 하니까.

원전비리로 생긴 전력난은 한전에서 알아서 관리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찾아온 또 다른 전력난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남자와 여자가 마법에 걸리게 하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2년이라고도 하고 3년이라는 설도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화학반응이 일어나 서로 강하게 끌리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은 정말 왜 그렇게 짧은 것일까.

더 이상 캐미* 돋는 일은 없는 것일까.


호르몬의 장난인가.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의 한계인가. 아니면 두 사람이 각자 열심히 돌리고 있던 발전소의 가동을 스스로 멈춘 탓일까. 어느 날부터 찾아온 전력난에 고민하고 있는 중년들을 위한 신통력 있는 해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새로운 발전소를 세워야 하는 걸까?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과 영혼이 있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살던 집도 점점 업그레이드를 시키면서 살아왔듯이 우리의 사랑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뜨겁게 활활 타오르던 그런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보다 더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을 찾아서 새로운 여정에 나서야 한다.


힘이 넘치게 떨어지는 폭포와 같은 사랑이 아니어도 잔잔한 호수에 한 줄기 햇살이 비칠 때의 설렘 같은 그런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되지 않을까.

여자와 남자로서 서로 당기는 그런 강한 끌림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친구 간의 끈끈한 의리 같은 것이 싹트게 되어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는 것은 아닐까.

자식을 낳아 함께 키워가고 살림을 함께 늘려가는 동업자로서의 도리를 알게 된 시간들이 쌓여가는 것을 함께 지켜보는 보람을 발견하면 되는 것 아닐까.

사라져 버린 전기에 대한 아쉬움으로 새로운 짜릿함을 찾아 나서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비단 나만의 일도 아닐 것이다.

정신적인 사랑이나 잔잔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입이 아프게 예찬해 본다 해도 감전된 듯 뜨거웠던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들 거리며 흔들리는 중년의 오후를 살려 낼 벼락같은 사랑의 부활을 꿈꾸는 건 과욕일까.



*캐미 : 영어 ‘캐미스트리(Chemistry)’의 약자로, 남녀 간에 성적으로 강하게 끌리는 화학반응이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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