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올레] 말미오름, 끝이 아닌 길

by 강마레

제주의 겨울은 뉴욕보다, 서울보다 다정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사납지 않았고, 빛은 멀리서 온 편지처럼 느리게 닿았다.


시흥초등학교 앞, 제주올레 1코스의 시작점. 작은 표지판 아래 파란색, 오렌지색 리본이 살랑이고 있었다. 서연은 그 앞에 서서 한동안 리본을 바라보았다. 바르셀로나의 해변에서 맞았던 바람과는 다른 종류의 바람. 그때는 모든 것이 뜨거웠다. 이제는 모든 것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서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리본의 매무새를 다듬었다. 리본은 생각보다 단단히 꼬여 있었다. 그녀는 엉킨 매듭을 풀며, 지난 계절의 감정들을 천천히 정리하는 기분이 들었다. 손가락이 파란색, 오렌지색에 닿을 때마다, 어딘가 먼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졌다. 함께했던 여름밤도, 짧았던 서울의 재회도... 모두 이 길 위로 다시 엮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는 요즘 제주의 서귀포에 머물고 있었다. 한 해외 작가의 평전을 준비 중이었고, 마침 그 작가가 한 달간 제주에 머물게 되었다는 소식에 서연도 섬으로 내려왔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고요 속에서 글을 읽고 쓰기에 제주는 완벽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는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드디어 겨울이야.'


짧은 카톡 메시지 하나로 다시 시작된 이야기. 그는 언제나 이랬다.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 서연은 그 메시지를 받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단 두 글자 속에 담긴 의미를 곱씹으며. 그리고 그날 밤, 그녀도 짧게 답장을 보냈다.


'제주에서 올레길을 걸어보는 건 어때요?'

꼬여 있는 리본을 푸는 사이, 뒤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지만 망설이지 않는 리듬. 서연이 돌아보기도 전에, 목소리가 먼저 닿았다.


"이럴 줄 알았어요. 먼저 와 있을 줄."


준호였다. 검은 외투에 회색 목도리를 두른 채, 눈가에 낀 웃음기가 제주 햇살만큼 부드러웠다. 그 미소는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았고, 동시에 완전히 달랐다. 더 조금 깊어진 눈가의 주름, 조금 더 길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어딘가 더 단단해 보이는 표정. 그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것만은 변함없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여름의 장면이 찰나처럼 스쳤다. 그날 밤, 그 손끝, 그리고 아침의 창문 너머 햇살. 뾰족한 성당 첨탑 위로 쏟아지던 빛. 그때의 온기가 잠시 서연의 몸을 감쌌다가 사라졌다. 이제는 눈을 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서연이 천천히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불렀잖아요. 걷자고."


그리고 살짝 웃었다.


"기억 안 나요?"


"잘 알죠. 인스타 사진으로 바르셀로나로, 카톡 메시지로 제주로 사람 날아오게 만든 그 위력."

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라산이 부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네요. 당신이었어요."


그 말에 서연이 피식 웃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난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 무게를 잊게 해 주었다. 마치 어제 헤어진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둘 사이에 한겨울 제주보다 더 따뜻한 정적이 흘렀다. 준호의 손이 주머니에서 나와 서연의 어깨에 살짝 닿았다가 물러났다. 그런 사소한 접촉에도 심장이 반응했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악기에 다시 손을 댄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근데 같이 걷자고 하고서는…"


준호는 리본을 흘끔 보며 덧붙였다.


"파란색 올레 리본보다 당신 스카프가 먼저 보여서 반칙이에요."


서연은 자신의 스카프를 만지작거렸다. 짙은 남색, 마치 바르셀로나의 깊은 밤하늘 같은 색이었다. 그녀는 무심코 이 스카프를 골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무의식 속 어딘가에서 그 밤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연은 리본 쪽을 다시 쳐다보다가 물었다.


"괜찮았어요? 여기서 시작하는 거."


"걷자고 한 사람이 예쁘면, 어디든 출발점이죠."


그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그 말이 너무 가볍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췄다.


"진심이에요. 가끔 농담 같지만."


서연은 무슨 말이라도 하려다 말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이 말을 덜어내기에 더 좋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처럼.


그들 사이에는 이미 많은 말이 오갔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며칠, 그리고 그 후의 메시지들. 서연은 때때로 그가 보낸 사진들을 꺼내보곤 했다. 마드리드의 황혼, 뉴욕의 가을 공원, 그리고 첫눈 내린 서울의 거리. 그 사진들을 통해 그녀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가 그녀의 걸음을 따라오고 있었다.


둘은 말없이 첫 굽이를 돌았다. 그 사이, 지난 계절들이 뒤를 따라왔다. 서울의 봄, 바르셀로나의 여름, 뉴욕의 가을. 그중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고, 발밑에 겹쳐지는 듯했다.


오름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았다. 서연은 가끔 뒤를 돌아보았다. 준호가 따라오고 있는지, 아니면 어디선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그때마다 준호는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셔터를 누르지는 않았다. 마치 이 순간은 카메라 속에 담기에는 너무 소중하다는 듯이.


"겨울이라 그런가…"


준호가 말했다.


"풍경이 더 잘 보여요."


서연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나뭇잎이 거의 없는 겨울나무들 사이로 바다와 하늘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치 세상의 윤곽이 더 뚜렷해진 것 같았다.


"겨울엔 마음이 덜 복잡해서 그런가 봐요. 겉도는 게 없으니까."

그녀의 말에 준호는 잠시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조용히 물었다. '당신의 마음도 그런가요?' 하지만 소리 내어 묻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서연의 머리카락에 걸린 마른 나뭇잎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아직도 그 마음에 계절이 있어요?"


준호가 나뭇잎을 바람에 날리며 물었다.


"내 마음속엔 아직 여름인 것 같은데."


서연은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의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았다. 바르셀로나의 여름, 그들이 함께했던 그 뜨거운 시간. 그녀도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도 나쁘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모든 것이 잠시 멈춘 것 같지만, 사실 그 아래에서는 뭔가 자라고 있으니까요."


준호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의 말이 그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

둘은 천천히 말미오름을 향해 걸었다. 멀리서부터 낮고 긴 바람이 능선을 타고 불어왔다. 마치 오래 기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말미오름 정상엔 바람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멀리까지 탁 트인 풍경은 날카롭고 투명했다. 겨울 바다는 무채색의 물결로 이어졌고, 능선 너머 마을 지붕들이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바람은 쉼 없이 불어와 볼끝을 간질였고, 발아래 펼쳐진 제주 풍경은 바람 속에 머물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수평선과 맞닿은 오름 위, 소나무 하나가 쉼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기댈 것도 없이, 뿌리 하나로 버티는 나무. 서연은 그 나무를 한참 바라봤다.


"쟤는 혼자서도 잘 버티고 있네요. 바람이 저렇게 센데."


준호는 나무에서 그녀로 시선을 옮겼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 바다를 바라보는 맑은 눈동자, 그리고 입가에 머물고 있는 희미한 미소. 그는 그 모든 것을 마음속에 새겼다. 카메라 없이도.


"버티는 게 아니라… 곁에 누군가 있었으면 하는 순간이 있는 거죠. 소나무도 오늘이 그런 날일지도 몰라요."


그의 말에 서연은 가슴 한쪽이 뜨겁게 조여 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말이 정확히 자신의 마음을 짚어낸 것 같았다. 그녀는 겉으로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나무처럼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스카프를 스치듯 흔들었다. 준호는 가만히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 위로 스카프를 정리했다. 그 손길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쳤을 때, 서연은 숨을 살짝 들이켰다. 그의 따뜻한 체온이 차가운 공기를 뚫고 그녀에게 닿았다. 준호의 손이 머무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 순간을 밀어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손이 천천히 그녀의 등을 감싸 안았다. 조심스럽게, 마치 오래된 책을 펼치듯이. 서연도 한 박자 늦게 팔을 들어 그의 허리를 감쌌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소나무처럼 흔들리던 바람 속에서. 몸을 맡기는 건 마음을 여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흔들리지 말라고요."


준호가 낮게 말했다. 서연은 그 품 안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녀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사실은 준호의 품 안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던 것처럼.


준호도 알고 있었다. 이 포옹이 말보다 먼저 약속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카메라 없이, 셔터 없이, 그저 두 사람의 숨결만으로.


흔들리지 말라는 그 말은 그녀에게 한 말이기도 하고, 준호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괜찮아요."


서연이 조용히 답했다.


"이렇게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멀리 선 바다가 반짝였고, 말하지 않은 고백들이 소나무 가지처럼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포옹을 풀지 않은 채, 천천히 몸을 나란히 했다. 바다를 함께 바라보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준호의 손이 슬며시 서연의 손을 찾았고, 서연은 그 손을 잡았다. 그들의 손가락이 얽혔다. 따뜻함과 차가움이 하나로 섞였다.


"그런데요, "


준호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쯤에서 우리, 바람 핑계로 한 번쯤 더 안아도 되지 않나요?"


그 말에 서연은 잠깐 숨을 들이쉬며 웃었다. 그의 직설적인 솔직함이 때로는 그녀를 당황하게 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준호의 매력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사람. 사진작가다운 면모였다.


"두 번째는 핑계가 아니라 협상이죠."


"오, 이제 나랑 장단 맞춰주는 거예요?"


준호가 괜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내가 먼저 안았는데, 이번엔 서연 씨가 먼저…"


"쉿."


서연이 그의 입가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막았다.


"기록은 묻어두고, 순간만 기억해요."


그 손가락이 준호의 입술에 닿았을 때, 그는 숨을 참았다. 다기 뉴욕으로 떠나기 전 청량리 플랫폼에서의 첫 키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이랬다. 서연의 손가락이 그의 입술을 스치고, 그다음은... 준호는 그 기억에 사로잡혀 잠시 멍해졌다.


서연은 잠시 주춤했지만, 마음이 먼저 발을 움직였다. 머릿속에서는 '지금'과 '다음'을 저울질하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했다. 그녀는 준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의 품은 그런 계산을 잠재우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언제 흔들릴지 몰라도, 이 품은 나를 지탱해 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녀는 다시 한번 그의 품 안으로 몸을 맡겼다.

그녀는 답을 모른 채, 그 품 안으로 다시 안겼다. 계산보다 먼저 반응한 마음이었다.


"두 번은, 그냥 오늘의 규칙으로 하죠. 사실 국룰이에요"


준호는 그녀를 더 꼭 껴안았다. 마치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들의 심장 박동이 하나로 섞이는 듯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더 가까워지는 두 사람이었다.


"세 번째는?"


준호가 귓가에 속삭였다.


서연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직 모르겠어요', '기다려 봐요', 그리고 어쩌면 '희망하고 있어요'. 준호는 그 미소를 읽어내는 데 능숙했다.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으니까. 순간을 포착하는 일.


바람은 멈추지 않았고, 소나무도, 그들도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렀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은 채, 그저 서로의 온기만을 느끼며.


말미오름을 내려와 마을길로 접어드는 길목, 조용한 오름의 능선 뒤로 종달리 마을이 아득하게 펼쳐졌다. 온통 하얀 벽과 검은 지붕의 집들이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두 사람은 풍경 속에 녹아든 듯한 기분으로 천천히 걸었다.


"여기서 저기까진 금방이네."


준호가 종달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시작점 하고 거의 이웃이잖아요."


"맞아요. 조선시대 제주목사도 시흥에서 시작해서 종달리로 시찰을 했대요."


서연이 덧붙였다.


"시작과 끝이 가까이 있다는 건, 뭔가 좋지 않아요?"


"좋죠. 뉴욕이랑 제주도 가까울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논리가 좀 비약인데요?"


"로맨스는 원래 논리보다 직진이 중요합니다."


준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가, 스스로 웃었다. 서연도 따라 웃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겨울 공기를 타고 멀리 퍼져나갔다. 그 소리가 타고 가는 길 끝에, 그들의 미래가 있을까? 서연은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약속이 제주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이 겨울의 끝에는 또 다른 계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웃으며 골목을 돌 때, 마을길을 걷던 한 올레꾼이 지나가며 말을 건넸다.


"두 분 참 잘 어울려요. 신혼부부세요?"


서연이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고, 준호가 먼저 대답했다.


"거의요. 올레길 기준으로는 중간쯤 왔습니다."


그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눈빛만은 달랐다. 준호는 그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길 바랐다. 꿈이 아니길 바랐다. 함께 걷는 길에, 진심이 하나 둘 얹히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이 이미 오래전에 서연에게 길을 내주었다는 것을.


"아직 반도 못 왔거든요."


서연이 곧장 말을 받았다.


준호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럼 우리, 이 코스 끝까지 걷고 나면 신혼부부가 되는 건가요?"


그 물음 속에는 진지한 질문이 숨어 있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당신은 나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준호는 말은 장난처럼 뱉었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서연의 대답을 기다렸다. 마치 올레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히, 그러나 간절하게.


서연이 웃을 때마다, 그의 마음엔 조용한 확신이 조금씩 차올랐다.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르셀로나에서의 약속이, 이제 제주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연은 한 박자 머뭇거리다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러면... 2코스가 시작되겠죠."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준호는 정확히 알았다. 그들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 길을 함께 걷고, 또 다른 길로 이어질 것이다. 2코스, 3코스... 계속해서.


다시 시작된 길 위에서, 두 사람의 웃음이 겨울바람보다 먼저 퍼져나갔다.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깨가 자연스럽게 맞닿았다. 그리고 준호의 손이 서연의 손을 감싸 쥐었다. 차가운 손끝이었지만, 그 온기가 서연의 심장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도 그의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갈까요?"


준호가 물었다. 서연은 잠시 생각하다 미소 지었다.


"그냥... 길이 데려가는 곳으로요."

그들은 맞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제주의 겨울 바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바다는 아직 멀었지만, 그들에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함께 걷는 길이라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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