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이야기를 다룬 세상을 바꾼 변호인(On the basis of SEX)이라는 영화가 있다.성별에 의한 차별이 만연한 과거의 미국을 살았던 여성 변호사가 그걸 깨부수기 위해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과 싸우는 내용인데,'Nor does the word FREEDOM'이라는 대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출처: 왼쪽부터 롯데엔터테인먼트, CGV아트하우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 그리고 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데서 나오는 반감 때문인지, 혹자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부터 색안경을 끼고 비난했다.
물론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겪어왔고, 여전히 겪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내 여동생, 내 누나, 내 엄마, 내 친구, 내 와이프, 내 딸이 될 수 있다. 아니, 이미 김지영일 수도 있다.
과거를 살면서 특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세대들, 그들이 만든 세상에서 그들로부터 배우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세대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하나하나 배우고 있다. 평생 살면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몇 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하나를 배우니 둘이 보이고, 그런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다 보니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조금 답답하더라도 하나씩 알려주면 변화가 생길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급격한 변화의 과정에서 Misogyny가 크게 이슈가 되다 보니 성별 간 다툼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Misogyny를 '혐오'라는 단어로 오역한 것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든 것 같다. 사전적 의미의 혐오가 아니라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인데 말이다. 하지만 성별로 편을 갈라 서로 싸울 문제가 아니다.
Misogyny의 뒷면에는 Manbox도 있다. 깔깔거리며 놀고 있는 여자 아이에게 '여자 아이가 조신하게 있을 것이지'라고 말하는 것이나, 체육 시간에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아이에게 '사내자식이 나가서 씩씩하게 공도 차고 그래야지'라고 말하는 것이나 모두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Misogyny를 하는 여성도 있고, Manbox를 하는 남성도 있다.
물론 수천 년 전부터 뿌리깊게 박혀 있는 Misogyny를 없애는 것이 더 힘들겠지만, 이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상호 간 존중의 문제이다.
차근차근 하나씩알려주자.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나 82년생 김지영 같은 영화를 보게 하자. 그리고 영화에 나온 것들이 픽션이 아니며, 경험하지 못했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라서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여성들이 실제로 겪어온 일들이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자. 그러다 보면 '여성스러움'이나 '남자다움'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배우는 사람들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주변을 둘러보자.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조금씩 보일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딱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상식 선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옳고 그름의 문제다. 사실 필자도 아직 부족하다.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많은 것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 싸움이 아니라 배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의 후기를 쓰면서 영화 포스터 이미지를 두 장 가져왔다. 포스터는 당연히 저작권법이 보호하고 있는 저작물이고, 포스터를 다운받았다가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것은 저작물의 복제와 공중송신에 해당한다. 원칙적으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복제 및 공중송신을 하면 복제권과 공중송신권을 침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필자는 저작권을 침해한 것일까?
우리 저작권법은 저작물 이용을 통한 문화의 향상 발전을 위하여 특정한 경우에 저작권자의 저작(재산)권을 제한함으로써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저작권법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와 제35조의5(저작물의 공정한 이용)가 있다.
저작권법 제28조에 따르면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할 수 있다.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정당한 범위 안에서 인용했는지 여부는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는데, 반드시 비영리적인 이용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은 비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의 경우에 비하여 자유이용이 허용되는 범위가 상당히 좁아진다.
한편, 저작권법 제35조의5에 따르면 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정당한 이용인지 여부는 이용의 목적 및 성격,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
필자는 영화리뷰를 쓰면서 해당 영화들을 소개하기 위해 포스터를 가져와 인용했는데, 이는 영리 목적 없이 영화의 소개 또는 비평을 위하여 리뷰의 일부분으로 포스터를 이용한 것이므로 저작권법 제28조에 해당될 수 있으며,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제35조의5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스틸컷의 경우 포스터보다는 조금 엄격하게 보아야 한다. 스토리상 중요한 부분이거나, 여러 장을 이용하여 스토리를 쭉 설명하는 경우 등에는 그러한 인용 행위 자체만으로 수요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제28조나 제35조의5에 해당되기 어렵다. 이 경우 저작재산권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저작권 침해가 된다. 가끔 SNS를 보면 캡처 수십 장을 이어 붙여서 영상 콘텐츠 자체를 정지영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게시물이 있는데, 이런 게시물은 저작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
그리고 위와 같이 저작재산권이 제한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출처를 명시하여야 하며, 출처를 명시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는 어려울 수 있으니, 가능하면 제작사나 배급사 등 공식 관계사에서 제공되는 이미지를 사용하고 이들을 출처로 표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처럼 영화를 본 후 생각을 정리하는 것까지 즐기는 사람도 있을 텐데, 리뷰를 하면서 포스터를 인용할 때는 항상 명심하자. 포스터가 리뷰의 전부이거나 주된 부분이어서는 안 되고, 출처도 빠트려서는 안 된다. 이왕이면 저작권법 제28조, 제35조의5, 그리고 제37조를 꼭 직접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