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7월 3일 월요일, 오후 10시 46분 장소: 집, 침대 위 새 시계를 샀다. (흐흫)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떡하지'라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이번 달 월급(10일) 들어오려면 아직 일주일이 남았고 나는 오늘도 미련하게 새로운 중고 시계를 사버린 것이다. 그래도 어제 애물단지를 하나 팔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평소에도 눈여겨보던 시계라는 점에서 위안을 찾는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데다가 무브먼트도 스위스 범용으로 꽤 괜찮고, 더군다나 아직 가져본 적 없는 골드코팅 케이스다(이건 거짓말. 사실 쿼츠로 구동되는 골드코팅 케이스 시계가 있다. 오토매틱'은' 없다는 뜻이다). '데일리로 차기에도 좋은 100미터 방수'같은 소리를 하지만, 그럼에도 '괜히 샀나?' 싶다. 돈은 쓰지 않음으로써 아끼는 것인데 왜 이렇게 적잖은 돈을 턱턱 내는지 모르겠다. 지금 환불해 달라고 하면 해주나? 저번 판매자는 안 해줬는데.
시간: 같은 날, 오후 23시 장소: 집, 침대 위 방금 판매자가 보내준 계좌번호랑 전화번호를 체크해 봤다. 다행히도 사기는 아닌 것 같다. 혹시 모르니 판매자가 올린 기존 매물들을 훑어본다. 종종 꽤 값비싼 것들이 눈에 띈다. 어? 이거 있으셨네. 내가 항상 갖고 싶어 하던 다이버 시계. 내가 산 시계는 이 판매자가 다른 사람한테 샀던 물건이라는데, 판매자가 보기에는 영 성에 안 찼나? 이런 생각을 하며 쭉 스크롤을 내린다. 뭐, 어때. 내가 예쁘게 차주면 되지.
시간: 7월 4일 화요일, 오후 2시 장소: 사무실 판매자가 분명히 오늘 아침에 보내준댔는데 보내주지 않았다. 우체국택배 거나 편의점택배라면 적어도 오전에 보내주셔야 익일 택배로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보내주시지 않았다는 것은 최소한 택배가 오는 날짜가 목요일(6일)이라는 것이다. 내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린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이라도 환불해 달라고 해야겠다. 흔들흔들. 아니, 그 시계, 내가 갖고 싶었던 거야. 확실해(?). 갈대 같은 마음을 흔들리도록 내버려 두며 나는 월급날까지 쪼들릴 며칠을 생각해 본다. 어쨌든 최대한 돈을 아낄 예정이므로 편의점 군것질도 줄이고 새로 나온 시계 잡지도 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모든 신경은 판매자가 오늘 보내주시기는 하려는지에 달려있다. 돈이 많이 드는 취미를 가지다 보면 이렇게 취미생활용품 하나하나가 꽤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이건 나의 큰 기쁨이고 즐거움인데, 어떻게 멈추겠는가.
시간: 같은 날, 오후 6시 장소: 사무실 판매자가 방금 운송장을 보내주셨다. 편의점 택배로 부쳤다고 한다. 아, 편의점 택배로 부치셨다면 분명 택배사에서 내일 오후에 수거해서 접수할 테지. 내일모레(6일)에나 받을 수 있겠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시간: 같은 날, 오후 7시 장소: 집 택배사의 새로고침 버튼을 치맛자락처럼 잡고 미저리처럼 늘어지는데 문득 이상한 걸 보았다. 왜 택배사에서 수거해 갔지? 보통 편의점 택배라면 아직 편의점에서 수거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아무런 수거 정보가 뜨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집하'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이러면 정말 내일(5일) 받을 수 있는 걸까? 오! 제발! 제발 그랬으면!
시간: 7월 5일 수요일, 오후 2시 장소: 사무실 시계 왔다(흐흫). 방금 문자 왔다(흐흫). 아침부터 택배사 배송조회의 스크롤을 붙잡고 있던 보람이 있었다. 이제 퇴근하고 집에 가면 집에 시계가 와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쁘다. 빨리 퇴근하고 싶다. 혹시 배송 오는 도중에 문제가 있진 않았겠지? 혹시나 깨지거나 포장이 허술하진 않았겠지? 그런 생각에 불안해하며, 또 설렌다.
시간: 같은 날, 오후 7시 장소: 집 골드코팅 케이스에 빈티지 복각 디자인, 더군다나 스위스 무브먼트에 100m 방수성능. 택배상자도 정리하지 않은 채 나는 시계를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판매자가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띈다. 시계줄이 너무 약해서 시계를 풀다가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겠구나 싶은 것, 사진으로 볼 때와는 다른 모양새에서 살짝 낯선 감각을 느끼는 것, 그리고 역시 보증은 안 되는 해외병행구입이라는 것(국내 정식 셀러의 제품과 달리 해외병행구입제품은 대부분 보증이 안된다). 이거 고장 나면 어떡하지? 부품을 한국에서 구할 수는 있나? 무브먼트는 수리할 수 있겠는데 혹시 유리가 깨지면 어떡하지? 그때 같은 유리로 수리는 할 수 있나? 같은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새 시계를 받고도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고 마는 것이다.
시간: 7월 6일 목요일, 오후 1시 장소: 사무실 역시 시계를 풀고 찰 때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16mm 디버클을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나의 문제는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인데, 더 큰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필요한 제품이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시계랑 색깔 맞춰서 로즈골드 색상 하나, 여분의 실버 색상 하나를 알리익스프레스로 구매한다. 알리익스프레스니까 아무래도 시간은 좀 걸릴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손목 위를 확인한다. 시계가 참 예쁘다. 날짜창이 없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오차도 많이 안 나고 무엇보다 내가 평소에 차지 않던 골드코팅케이스라서 그런지 느낌도 다르다. 문제는 이렇게 시계만 보느라 시간이 몇 시인지를 보지 않아서 항상 다시 확인한다는 것이다.
시간: 7월 7일 금요일, 오전 9시 장소: 사무실 같은 시계를 지금 이틀째 차고 있다. 새시계라서 그런지 만족감이 남다르다. 이번에 산 시계가 갖는 특유의 케이스와 골드코팅 케이스가 보여주는 독특한 색감이, 이전에 내가 가져왔던 시계랑 다른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중고로 산 오토매틱 시계인데도 시간의 오차가 많이 나지 않는다. 꽤나 만족스러운 이틀째의 감상. 이번 소비도 역시 좋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직 월급날까지는 3일 남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