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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Jul 18. 2023

돈은 없지만 나도 저 디자인 갖고 싶어

어떻게 이런 시분침을 만들 수 있었던 걸까? 1900년 회중시계 Goliath  full calendar Moon-phases(timeline watch)


돈은 없지만 나도 저 디자인 갖고 싶어




무엇을 시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가격이다. 일단 내가 계좌로 송금할 수 있는 금액이어야 저 시계랑 알콩달콩 살든지 말든지 할 테니까. 그리고 두 번째가 디자인이다.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시계의 디자인 대부분은 기능으로 여겨지기에, 디자이너가 특정되는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디자인 특허가 따로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인상적인 점은, 사실로 확인해보지 않은 이 말을 경험적으로는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시계가 가격을 듣기 전까지는 고만고만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옛 왕조의 마지막 왕자가 차던 손목시계의 디자인에서 지금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하는 시계의 디자인이 알맹이 빼놓고는 거의 비슷할 수 있다(이건 여담이지만 알맹이는 세 번째로 중요하다. 그러나 고가의 알맹이라고 꼭 좋은 건 아닌데, 저가의 알맹이는 수리비가 싸고 유지보수가 쉽다는 상대적 장점도 있다). 그러니 '내가 돈이 없지, 취향이 없냐'는 말처럼, 시계는 사실 어느 가격대에서든 원하는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문득, 아주 특정한 시계의 디자인이 갖고 싶을 수 있다. 고가의 브랜드에서는 이런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자사의 시그니처로 내세운다. 왜 아니겠는가. 시계로 시간만 잘 보면 되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어떤 사람들이 디자인으로 시계를 판단하고 또 열광한다면 그것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면 된다. 이것을 통해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할 수도 있고 말이다. 디자인은 브랜드의 이름을 떠나서 그의 독자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다.


이렇듯 어떤 시계의 디자인에 당신이 흠뻑 빠져들었다고 해보자. 브랜드가 아니어도 되니까 곧 죽어도 이 디자인의 시계가 갖고 싶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만한' 시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생활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 온라인 중고시장을 뒤진다. 그 디자인의 시계가 갖고 싶다면 그것을 사면 되니까 말이다. 그 디자인의 시계가 막, 너무, 엄청 비싸지 않다면, 시도해 볼 만하다면, 기가 막히게 저렴해서 혹시 찔러볼 수라도 있다면, 우리는 적당한 매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서 온라인 중고시장을 뒤진다. 혹시 누군가가 시계의 값어치를 잘 모르고 싼값에 그걸 올려주지 않을까? 아니면 아주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시계를 정말 싸게 올려주지 않을까? 이건 정말 헛된 희망이지만, 문제는 아주 비현실적이지는 않다는 거다. 실제로 그런 매물이 업로드되는 경우가 있으며 나도 종종 그런 매물을 구입해 보았으니까. 이런 사례들 때문에 우리는 황금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어리석은 삽질을 계속한다.


그런데 이런 매물은 쉽게 볼 수 없으므로 둘, 알리익스프레스를 찾아본다. 앞서 언급했듯이 브랜드는 각자의 독자성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특정한 디자인을 강조한다. 심지어는 이것이 하나의 시리즈가 되어, 브랜드의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것을 '오마주'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지, 굳이 가짜 시계를 찾지 않더라도 알리익스프레스에 비슷한 디자인의 시계가 매번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게 업데이트가 된다. 알리익스프레스에도 저마다 상징적인 중국제 브랜드가 많고(개중에는 독자적인 디자인을 만들거나 특정 팬층을 거느린 브랜드도 있다), 이 브랜드들도 매번 일을 한다. 이 말인즉슨, 어떤 브랜드의 어떤 디자인이 유행을 탄다면, 알리익스프레스의 이들은 그와 똑같거나 혹은 비슷한 디자인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원래 브랜드가 만들던 시계보다 저렴한 가격, 더 나은 소재 등을 쓰는 희한한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이제는 시계 박람회 정보를 보면서 '와, 이 시계 예쁘다. 조만간 알리에 뜨면 좋겠다'하게 되는 것이다. 뭐, 불법은 아니니까. 그런 마음으로 매번 알리익스프레스를 뒤적거린다.


자, 그럼에도 원하는 디자인의, 쓸만한 시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셋, 구글링을 시작한다. 혹시 놓친 '오마주'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흔히 오마주(hommage)라고 하면 '존경'을 나타낸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이런 의미를 담아 마이크로브랜드가 기존의 브랜드에서 만들지 않던 전설적인 빈티지 시계의 모습을 그대로, 혹은 자기만의 특색으로 재해석하여 시장에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찾는 건, 나에게 의미하는 건 전통에 대한 존경 같은 게 아니다. 나는 그냥 그 디자인의 쓸만한 시계가 갖고 싶고, 내가 머릿속에 입력한 '오마주'라는 건 그저 '싼값이지만 내가 갖고 싶은 디자인이고 쓸만한 시계' 정도이다. 하하하.




이렇듯 비열한 나는 여전히 특정 브랜드의 특정 디자인 시계를 찾아다니고 있다.  워낙에 독특한 디자인이라서인지 다들 손을 대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나 원. 벌써 몇 달째 매물을 구하고 있는데, 이 정도면 그런 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누구에게나 드림워치가 있듯이 나에게도 그 디자인의 시계는 그런 위치인데, '역시 조바심과 성급함을 앞세워서 되는 일은 없는 건가' 생각만 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쯤 되니 돈 모아서 사라는 신의 계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좀스런 나의 시계가 가듯이 무사편안하게 가기를 바란다. 어쨌든 일하기 싫은 김에 있지도 않은 시계 찾자고 4시간 정도 잘 보냈으니 말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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