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아이는 퍼플을 좋아한다. 나는 노란색 컵에 물을 마시고 노란색 옷을 입지는 않지만, 아이는 퍼플색 컵에 물을 마시고, 퍼플색 옷을 입는다. 바바파파 아기들 중에서도 퍼플색인 바바벨을 가장 좋아한다.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처음 말한 색깔이 퍼플이었다. 보라색이 아니라 퍼플. 퍼플이라는 단어를 듣고 입을 한번 떼 보았는데 이런! 정말 퍼플과 비슷한 말이 자기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발음하기 쉬운 "퍼플"은 아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였고 이 놀라운 경험으로 아이는 퍼플을 좋아하게 되었다.(반대로 보라색을 정말 좋아해서 퍼플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말하게 된 것일 수도!)
함께 길을 걸을 때면 아이는 퍼플과 노랑을 찾는다. "엄마! 여기 퍼플 꽃이야. 정말 예쁘지?", "이건 엄마가 좋아하는 노란색이다!." 가끔은 "엄마, 이꽃 바바벨이 변신한 거 아닐까? 라며 귀여운 상상력을 더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가 열심히 퍼플과 노랑을 찾는 사이 나도 열심히 퍼플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가을이 왔으니 보라색 긴팔 티셔츠를 사고, 작아진 신발 대신 보라색 크록스도 사줘야겠다. 아이를 위한 보라색 물건들이 집안 가득 쌓인다.
퍼플 말고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여럿 있다. 언제 이렇게 커서 취향이라는 것이 생겼는지. 착한 공룡이라며 좋아하는 안킬로사우르스(초식공룡이니까 착한 공룡이다), 애착 인형 토끼(과연 이 인형에 애착이 될까 싶었지만 역시 클래식은 위대하다.) 사촌 누나, 페파 피그(페파와 조지가 또또와 자기 같다나). 포도와 바나나(그러고 보니 퍼플과 노랑일세)... 앞으로 여기에 또 어떤 취향들이 곁들여질까. 대견하고 기특하다.
금세 저녁 먹을 시간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생선구이를 준비하다가 문득 '나는 뭘 먹고 싶지?'라는 생각이 든다. 먹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베트남, 태국, 인도, 터키 등 외국 음식도 좋아하고, 유명한 브런치 가게는 다 가보고 싶었고, 소울푸드는 누가 뭐래도 떡볶이였다. 하지만 이게 다 언제적 이야기란 말인가. 그냥 준비하기 쉬운 음식으로 아이가 잘 먹고 나도 한 끼 때우면 되는거지.
퍼플, 안킬로사우루스, 토끼 인형, 페파 피그에 이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커피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위염 때문에 이제 자주 먹지도 못하잖아. 이걸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노란색은 이제 좀 유치하지 않나?내가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세뇌시킨 것은 아닐까? 여행은 안 간지 한참인데. 과연 다시 갈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쉬운 질문 앞에서 자꾸만 머뭇거리게 된다. 자꾸 자신 없는 질문만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나의 세계는 좁아지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은 이게 당기지 않는데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늘 100퍼센트 농도로 좋아할 수 없다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싫음이 0에 수렴하면 좋아하는 것일까? 이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근사해 보일까? 이상해 보일까?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이러다가 먼 훗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건 아닐까. "내가 널 키우느라 얼마나 희생했는 줄 알아?" 정말 끔찍한 일이다. 결국 이 원망은 나를 향한 말이다. "야! 너 제대로 살아. 네 이름 석자 잊지 말고 살라고." 나중에 이상한 소리 하지 않으려면 준이 핑계 대지 말아야지. 바쁘다고, 시간 없다고 합리화하지 말아야지.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내 이베이 장바구니에 잠들어있던 플레이모빌 장난감을 주문해야겠다. 90년대 나와 외국 중고거래로밖에 구할 수 없는 플레이모빌로 지금 나오는 플레이모빌보다 훨씬 둥글고 귀엽다. 그렇지! 이게 바로 내 취향이지. 이런 쓸데없는 것이야말로 누군가의 취향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쓸모는 전혀 없고 귀엽기만 한 이것을 위해 낯선 외국어를 더듬더듬 읽어 결제대행 서비스와 배송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번거로움과 물건값보다 더 비싼 배송비를 지불하는 비효율도 마다하지 않는 것. 좋아하지 않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
이러한 의식의 흐름으로 우리집에 곧 택배가 도착한다. 아주 훌륭한 소비다. 모든 일에 명분이 더 중요한 것이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나는 내 취향을 지킬 것"이라는일종의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