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는 가운데 노란색 통꽃이 모여 피고 가장자리에 흰색 혀 꽃들이 돌려 피는 들꽃이다. 이름은 몰라도 누구나 딱 보면 척 아는 꽃일 것이다. 그만큼 흔해 어디서나 자주 볼 수 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철길이 있었다. 기차가 다녔는지 안 다녔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철길 주변 버려진 땅에는 이름 모를 들풀들이 내 허리만큼 자라고 있었다. 개망초, 강아지풀, 명아주, 도깨비풀들이 얽혀있는 그곳이 우리에게는 정글이었다. 동네 어린이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정글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보물 찾기도 하고, 소꿉놀이도 했다. 버려진 세월만큼 정글 곳곳에는 보물들이 숨겨져 있었다. 깨진 그릇, 버려진 숟가락, 플라스틱 바구니, 비닐봉지, 술병 등은 우리에게 좋은 장난감이 되어주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성껏 모은 사금파리를 풀을 뜯어 잘 닦는다. 버려진 벽돌을 살살 굵어 고춧가루를 만들고 풀을 뜯어 김치도 담근다. 모래를 잔뜩 얹어 밥도 짓고 개망초도 두어 개 올리면 맛있는 한상이 차려진다. 노랗고 흰 개망초의 역할은 당연히 계란 프라이다. 그래서 줄곧 개망초를 계란꽃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개망초라는 이름보다 계란꽃이라는 이름이 더 진짜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
개망초는 아무데서나 잘 피고, 잘 크는 꽃이라 아주 흔하다. 좋아하려면 흔한 것을 좋아하는 게 좋다. 흔하게 볼 수 있고 볼 때마다 흔하게 기뻐할 수 있다. 그것이 흔한 것의 힘. 7살 때 철길마을에 핀 개망초가 오늘 우리 집 앞에도 피어있다. 당장이라도 문밖으로 나가면 그때 그 시절 나를 즐겁게 해 주었던 꽃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행복하다.
모든 것이 변해도 그대로인 것이 있다는 게 참 든든하다.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 순리지만 왜 가끔은 모르는 척 믿고 싶지 않나. 변치 않는 것도 있다고, 영원한 것도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믿음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오늘도 나의 퇴근길을 반겨준 개망초 아니 계란꽃 덕분에, 이런 변치 않는 것들이 내 삶 곳곳에 녹아있는 덕분에, 나의 뿌리가 조금 더 튼튼해지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