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가 밝고 유쾌하길 바랐지만 나는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나는 내가 친구도 많고 어디서나 큰 목소리를 내길 원했지만 나는 낯가림이 심한 아이였다. 나는 내가 늘 웃고 행복하길 바랬지만 나는 늘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 내가 바라는 나는 언제나 멀게만 느껴졌다. 항상 밝게 웃는 노란색 스마일리 캐릭터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노란색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어른이 된 이후 유쾌하고 친구도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고이 접어두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는 그냥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조용하고 낯가림이 심한 소심한 사람이다. 다만,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포기하지 않았다.
조심하지 않으면 금세 우울에 빠져든다. 내가 아는 긍정의 언어를 모두 이용해 다독이지 않으면 어느새 세상의 온갖 시름과 걱정을 끌어안고 있다. 이제 내게 노란색은 일종의 신호다. 걱정은 이제 그만 하자는,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는 신호. 곧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신호. 행복하자는 신호.
내가 바라는 행복은 엄청난 것이 아니다. 그저 조용하고 평화로운 하루가 어제와 같이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흘러가는 것. 불현듯 일어나는 사건도 좋은 일로 흘러갈 거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색이 노랑인 것이다.
우리의 뇌는 눈에 보이는 색을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노랑이 분명 당신이 경험한 노랑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의 삶 곳곳에 행복과 희망이 스며있음을 시시때때로 알려줄 무언가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똑똑한 듯 보여도 바보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니까.
내 책상을 지키고 있는 노란색 스마일리와 함께 pahadi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