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둘 다 책을 좋아하지만 우리는 영영 서로의 책을 공유할 수 없는 상반된 취향을 가지고 있다. 남편은 역사 소설 덕후이고 나는 에세이 마니아다. 그리고 절대 그 선을 함부로 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부부가 되었지만 나의 책장과 너의 책장은 우리의 책장이 되지 못했다.
일단 나는 역사에 그다지 흥미가 없다. 고등학교 때도 역사에 자신이 없어 이과를 선택했다.(물론 수학에도 자신이 없었지만) 역사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틈틈이 공부하기도 했지만 역사는 내게 재미나 흥미의 대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부와 의무감의 대상일 뿐이었다. 반면 남편은 역사를 정말 좋아한다. 그만큼 역사에 해박한데 그 점이 정말 부럽다. 역사 중에서도 역사 소설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모르긴 몰라도 알만한 역사 소설은 다 섭렵했을 것이다. 특히 조선 전기라면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열을 올린다. 역사 소설이면 어차피 허구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나는 역사 소설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모든 소설이허구이지 않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남편의책들은 대부분 누렇게 뜬 종이에 가끔은 국한문 혼용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더욱 흥미가떨어진다. 역사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편은 역사 소설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얻나 보다.
반면 에세이 마니아인 나는 '인사이트' 얻기 위해서 에세이를 읽지는 않는다. 물론 읽다 보면 통찰력을 얻기도 하지만 그걸 일일이 따지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공감하고 공감받기를 원하며 책을 읽는다. 나는 에세이 속 소소한 이야기가 좋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좋다. 나나 너나 모두 다 시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좋다. 작아진 코트부터 좋아하는 조식 메뉴까지, 생애 최초의 작은 성공 이야기부터 강아지 별로 떠난 반려견 이야기까지. 누군가의 일상 곳곳에 숨은 웃음과 눈물, 기쁨과 슬픔을 한 줄 한 줄 따라가다 보면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라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별 거 아닌 일상을 꾹꾹 정성껏 써 내려간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좋고, 그 따뜻한 시선 속에 평범한 순간이 반짝 빛날 때면 베베꼬인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그렇게 에세이를 읽으면 평범하다 못해 싱겁고 시시한 내 삶도 견딜만하다. 혼자 같은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긴다. 나는 살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에세이를 읽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대체로 역사 소설보다 에세이 표지가 훨씬 예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