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1000번째 글을 올렸다.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 딱 글 100개만 써보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글을 잘 쓰는 것도,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하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그리며 누군가 봐줬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워낙 남에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터라 익명성에 기대지 않았다면 평생 누군가에게 내 글과 그림을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참 감사하다.
첫 글을 쓰고 발행 버튼을 누를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날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고민할 것도 없이 기계처럼 발행 버튼을 누르지만 모든 처음이 그렇듯 클릭 하나도 결코 쉽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이 손가락은 내 손가락이 아니라고 주문을 외우면 브라키오사우루스만큼 무거운 검지를 들어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1분마다, 5분마다 조회수를 검색하던 그날, 나의 세계는 새로운 방향으로 목적지 없는 여행을 시작했다.
1000개의 글과 그림이 쌓이는 동안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거나 스스로 만족할만한 실력을 갖게 된 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관심보다 무관심에 익숙해지며 견뎌야 하는 나날이었다. 애써 파닥여봤자 우주 먼지에 불과한 나의 한계를 깨달아가는 시간이었다.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것 같은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최소한 나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나의 바람과 타인의 기대를 구별하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정답은 찾지 못했어도 충분히 의미 있다. 그 글들 덕분에 조금은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확신한다.
글을 쓰는 일은 예쁘든, 밉든 이리저리 나를 살피며 보살피는 일이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지금 나의 감정과 상태는 어떤지, 어떤 응원과 도움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일이었다. 내가 써 내려간 글은 못난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를 더 사랑하겠다는 일종의 다짐이다. 그 따뜻한 보살핌 덕분에나는 덜 불안하고 더 탄탄해졌다.
차곡차곡 정리된 마음에 타인을 위한 작은 여유도 생겼다. 내가 그랬다면 너도 그럴 수 있다는 걸, 너와 나는 분명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긴만큼 세상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한다. 안개 걷힌 쾌청한 바다에 먹구름이 몰려와도 다시 갤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브런치에 올린 첫 글은 2019년 7월 15일, 우리 집 첫 자동차와의 이별 이야기다. 남자 친구의 중고 자동차는 어느새 남편의 중고 자동차가 되었다. 그 낡은 자동차를 타고 우리는 첫 여행을 떠났고, 그 낡은 자동차에 첫 아이를 태우고 셋이 되어 돌아왔다. 우리들의 자동차는 추억의 페이지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엔진이 멈췄다. 그 애틋한 순간을 멋지게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마음과 다르게 어색한 글과 서툰 그림만 남았다. 다시 봐도 부끄럽지만 지울 생각은 없다. 그때의 최선이 그 글과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 처음부터 잘하려고 했다면 지금도 머뭇거리고만 있었을 것이다. 아마추어가 아마추어다운 게 당연한 거지.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냥 나답게.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살아간다. 그냥 꾸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