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마음이 서늘한 날이면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려 달님을 바라보며 걷는다.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따스한 노란빛이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달님은 언제나 말없이 다정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답답한 마음에 주절주절 하소연을 쏟아내다가 간절히 소원을 빈다. 무수히 많은 사연과 소원들이 달빛 아래 흩어졌다. 그중 뭐 하나 이루어진 건 없지만 그래도 나는 달님이 참 좋다.
추석이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떴으니 당연히 달구경을 가야지. 보름달은해와 지구, 달이 일직선에 있을 때 뜬다. 하지만 달이 타원형 궤도를 돌기 때문에 약간 차이가 있는데 올해는100년 만에 가장 둥근 보름달이 뜬다고 한다. 아이가 처음 소원을 비는 달이자, 내가 36년 만에 보는 가장 완벽한 보름달이다.
"준이야, 추석에는 달님께 소원을 비는 거야."
"소원이 뭔데?" 첫 번째 질문부터 난관이다.
"음... 소원이 하고 싶은 거나, 가지고 싶은 거?"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가 말했다. "아! 그럼 포도!"
"먹는 포도?" 소원이라 하면 거창한 것을 기대했던 나는 놀라 되물었다.
"응 포도!"
아이는 포도가 먹고 싶다고 했다. 이런, 안 사줄 수가 없네. 새끼손가락을 꼭꼭 걸고 내일 포도를 사러 가기로 약속했다. 제일 맛있는 걸로 잔뜩 사줘야지. 아이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포도가 뭐라고.
아이가 달님에게 빈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졌다. 달님께서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너무 어마어마한 소원을 빌었구나. 포도 같은 걸 바랐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