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에게 부탁을 많이 한다. 그것은 내가 호구이기 때문이다. 호구란, 허허실실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인데 거절을 못하는 내가 딱 그 유명한 호구다.
반면에 나는 부탁을 잘 못한다. 사실 부탁받는 것이 싫다. 내가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 없기 때문에 부탁을 못하겠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 받기만 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부지런한 호구라면 거절을 연습할 테지만 나는 게으른 호구이기 때문에 가만히 누워 합리화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엄청난 부탁이라면 어차피 내가 들어줄 수가 없다. 난 돈도 없고 빽도 없으니까. 거절하지 않아도 저절로 거절이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건 사소한 부탁들이다. 물건을 대신 주문해 준다던가, 아이를 잠깐 봐준다던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빌려준다던가. 조금 귀찮을 뿐 호의만으로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결국 내가 받는 부탁이란,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인지상정으로 할 수 있는 작고 귀여운 것들이다. 이 정도는 평균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호구가 아니라도 베풀 수 있는 선행이다. 내가 호구라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하지만 작은 친절이든 큰 친절이든 친절은 친절이고 나의 착한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며 나는 부지런히 덕을 쌓고 있는 것이다.
‘신이시여. 잘 보고 계시나요? 제가 이렇게 착한 일을 많이 했어요. 부디 저를 잊지 마세요. 때때마다 착한 저를 기억하고 복을 내려 주세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 티끌 같은 덕을 모아 모아 언젠가 로또에 당첨될 것이다. 아니라면 그 언젠가 천국에 갈 것이다.
이 정도면 아주 공평한 거래다. 암요. 제가 이렇게 계산적인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