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다운 현대인이라면 고질병 몇 가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계속 뻐근하던 목이 어느 날부터 돌아가지 않았다. 정형외과에서 주사 치료도 받고 한의원에서 침도 맞아 겨우 목은 돌아가는데 그때부터 목과 어깨에 통증을 달고 산다. S자를 잃은 목은 한시도 쉬지 않고 통증으로 자신의 존재를 일깨우며 나를 채찍질한다. 자세 바르게 해! 운동 좀 해! 그렇게 목디스크는 20대 시절부터 함께한 위염과 더불어 나의 2대 고질병이 되었다.
이 죽비 같은 통증 덕분에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꼬박꼬박 운동하고, 허리와 어깨를 곧추 세우며 자세도 꽤 좋아졌다. 아니었으면 애진즉에 거북이를 이기는 거북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덜 아팠다 더 아팠다의 차이지 통증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통증이 나의 뇌를 관통할 때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쇼핑욕이 발동한다. 목디스크에 좋다는 것은 이것저것 다 사보았다. 목디스크용 베개 수만 다섯 손가락을 넘어가고, 다른 다섯 손가락도 갈고리형, 베개형 등 각종 마사지 기구가 차지한다. 베고 누워만 있으면 목디스크가 치료된다는 스트레칭 기구부터 폼롤러, 스파인 코렉터, 그리고 저주파 치료기까지. 카테고리도, 모양도, 소재도 다양하고 알차게 사고 또 샀다. 이럴 땐 만 부지런하다고 핀잔을 주려다가 이렇게라도 애쓰는 게 애잔해진다.
어느 날, 언니가 목과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자신 있게 나의 최애 마사지용 목침과 갈고리형 마사지기를 추천했다. 꽤나 효과가 좋았는지 언니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너는 어쩜 이렇게 좋은 걸 잘 알고 사니?”
말문이 턱 막혔다. 길고 긴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자발적 임상 실험의 역사를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장롱 속, 침대 밑에 숨어있는 수많은 검은 물체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언니...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야. 실패한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수십 개 중 그거 두 개 건진 거야...”
통장 잔고가 줄어든 만큼 통증도 조금은 줄었겠지. 물건이 쌓여가는 만큼 목디스크에 관한 내 지식도 조금은 쌓였겠지. 그래. 인생에 거저 얻어지는 건 없어. 그러니 멈추지 않고 이딴 노력이라도 계속해야지. 가만있지 말고 헛발질이라도 하자. 헛둘헛둘. 그러다 보면 무엇이라도 되겠지. 어디라도 가겠지. 혹시 알아? 이 모든 순간이 모이고 모여 내 목에 S자 곡선이 다시 찾아올지.
아마도 모두의 등 뒤에 각자의 헛발질들이 화석처럼 새겨져 있을 것이다. 내가 질투하는 그에게도. 잘난 누군가를 성급하게 부러워하지 말자고 내 최애 목침을 걸고 다짐한다. 그가 발밑에 쌓아온 간절한 빙산의 시간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