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손해 볼 것 없는 풍수지리 9) 완산칠봉과 전주천이 감싼 길지
긴 연휴를 맞아 휴식을 위해 전주로 여행을 떠났다. 뚜벅이 여행이라 전주 한옥마을에 숙소를 잡고 그 주변만 돌아다녔는데, 기대보다 전주 한옥마을의 규모는 컸고 아름다웠다. 첫 날 점심으로 피순대를 맛있게 먹고 산책을 하다 들어간 카페에서 우연히 창밖을 보는데, 돌담으로 둘러싼 공간이 보였다. 검색을 해보니 경기전이었고 조선왕조의 어진을 보관하고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풍수지리적으로 유명한 명당이라, 기운이 좋아 자주 산책을 하면 좋다는 블로그 후기를 읽고 흥미가 생겨 바로 입장권을 끊었다.
전주의 옛 명칭은 온고을로, 풍수적으로 완전하게 사람이 살기에 좋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전주 자체가 명당인데, 명당 중에서도 어진을 모시는 경기전을 이곳에 지은 이유가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은 단순한 사당이 아니라,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뿌리를 상징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태종때부터 전주 경기전에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고 있고, 아직까지도 이성계의 조상을 모시는 제사도 여전히 이 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곳은 풍수적으로도 길지(吉地)로 평가되는 자리로, 왕조의 근본을 지키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1) 경기전이 위치한 터의 지형적 특성
경기전이 위치한 전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경기전 자체가 완산칠봉에 직접 감싸여 있는 형국은 아니다. 그러나 경기전은 완산칠봉과 남쪽의 기린봉, 그리고 전주천이 조화를 이루는 위치에 자리하여 안정적인 지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조선 왕조의 기운을 보호하고 강한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전주천의 물길과 기운의 흐름
경기전 남쪽에는 전주천(全州川)이 흐르고 있다. 풍수에서는 물길이 기운을 모으고 분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주천의 흐름은 경기전의 기운을 순환시키면서 왕조의 운세가 지속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만약 물길이 곧게 흘렀다면 기운이 빠르게 흩어졌겠지만, 전주천은 자연스럽게 휘어져 경기전 주변의 기운을 안정시키고 있다. 현대풍수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것 또한 물길이라고 본다는데, 경기전 앞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행렬을 보니 전주천에 더해 물길이 하나가 더 있어 기운이 더 좋아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전의 배치는 왕실의 기운을 보호하고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1) 다중 문 구조로 기운을 보호
경기전은 외삼문(外三門) → 내삼문(內三門) → 본전(本殿)의 구조를 따른다. 풍수에서는 문이 많을수록 내부의 기운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외부의 나쁜 기운(살기)이 본전까지 도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층 구조의 문이 설계된 것이다.
(2) 본전의 남향 배치
경기전 본전은 남향으로 지어졌다. 남향은 양(陽)의 기운을 가장 많이 받는 방향으로, 왕실의 기운을 강하게 유지하는 데 적합하다. 조선왕조의 대부분의 전각과 궁궐의 정문은 남향으로 지어져 있다. 유일하게 동향으로 지어진 궁은 창경궁으로, 창경궁의 역할이 별당이었기 때문에 왕실의 기운을 보호하고자 동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경기전은 왜 남향으로 지었을까? 비록 진짜 임금의 몸은 이곳에 없지만, 임금의 모습을 담은 어진은 당시에 임금과 동일시하게 귀하게 여겨졌다. 어진을 잘 모시면 한양에 있는 왕실의 기운도 강해질 것이라 생각해 남향으로 지은게 아닐까? 한양과 전주에서 전주이씨 조선왕조의 기운은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풍수지리적으로 해석할 때, 경기전은 단순한 사당이 아니라 조선 왕조의 기운을 지탱하는 중요한 터전이었다. 실제로 방문해보니 경기전 내부는 넓은 편이었고, 한양에 있던 궁들과 비슷한 생김새로 지어져 있었다. 어진박물관까지 한 차례 돌고 천천히 산책을 하며 주위를 돌아보니, 사방이 탁 트여 답답함이 없고 공기는 포근하게 느껴져 이런곳이 명당이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