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일찍부터 울팀 영업부에서 연락이 왔다.
현재 판매중인 S/S메쉬 제품이 거의 다 소진되어 바로 리오더를 띄워야겠다며 기쁘게 연락해왔다.
제품을 기획하고 진행할 때마다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나를 포함한 많은이들의 노력의 결과물이었던 S/S제품이 이렇게 고객분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있으니 퇴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무척 뿌듯한 소식이기도 하고 참 기쁘다.
최근에 내가 출시했던 제품은 자세를 바르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성 퓨징브라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자세교정 의료용 기구는 아무래도 소재의 하드함이 특성이라 장시간 착용시,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있어, 오랜시간 착용할 수 없다. 이에 착안해서 봉제선이 없는 퓨징브라에 접목시켜 하루종일 속옷으로 편하게 입으면서도 자세를 좀 더 바르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점을 가진 브라이다.
사실, 처음 이 제품을 기획할 때를 떠올려보면 일단은 너무 막막했다. 그 당시에는 날 도와줄 팀원도 없이 디자이너는 오로지 나 혼자였고, 이미 맡고있던 다른 브랜드의 본작업도 진행중이었다. 갑자기 맡게된 새로운 브랜드의 예정된 런칭일자는 너무 촉박했다. 생산일자도 나올까말까한 아주 타이트한 스케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목표매출액은 상당히 높았다. 유관부서들이 한데모여 의견을 나누는 기획회의 자리에서는 '이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견이 많았다.
더욱이, 퓨징브라의 특성상 일반 원단보다 잘 늘어나는 부드러운 성질의 퓨징원단으로 기능성 자세브라를 만든다는것이 "1+1=2"처럼 당연한 결과가 보장된 쉬운 작업이 절대 아니었으니. 나역시 그부분이 너무 염려스러웠다. 정해진 메인원단이 없는데, 아니 원단뿐만이 아니라 아예 결정되거나 정해진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이 상황에서 세달 뒤, 런칭이라니....... 하늘이시여...
시중에 이미 나와있는 기존의 기능성 브라와 자세브라로 일컬어지는 제품들은 단단한 재질과 강한 압박감을 통해 자세를 교정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이 아니라, 여성들이 하루 종일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게, 오히려 속옷을 입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편안함을 기반으로 일반브라를 착용했을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바르게 '나의 자세를 신경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역시나 예상한대로 기능성 브라에 부드러운 퓨징 원단을 접목시켜 착용했을 때, 갑갑하지 않으면서도 등을 지탱해주는 자세브라를 만들어내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잘 준비해서 다음해에 런칭하자고 하고 싶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들. 참... 그 와중에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또 왜이렇게 굴뚝같은지!
시간이 촉박해도, 제품은 정말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
오로지 혼자이기에 오히려 더 진지하게 임하고 싶었다. 내가 기획한 방향이 옳은지, 유관부서와의 협업은 잘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결국, 열정에 또다시 힘을 쏟아부으며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
신기하게도, 마치 온 우주가 나를 돕는 듯한 느낌이었다. 짧고도 아주 짧았던 그 코딱지만한 시간 안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정과 테스트를 거쳤다. 그 결과, 마침내 개발한 퓨징 원단은 부드러우면서도 지지력이 상당해, 우리 제품에 아주 이상적으로 맞아떨어졌고, 기술적으로는 등판에 또 하나의 X자 패턴의 기능성 원단을 덧대어 특유의 퓨징 기술력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어진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팅 테스트 끝에, 마침내 내가 원하고 추구하던 기능성 퓨징 브라가 탄생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진행된 작업이 아니었기에, 결과물을 두 손에 받아들었을 때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쁘고 뿌듯했던 그 순간은 정말 잊을 수 없다. 이제 곧 이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게 된다는 생각에 설렘과 기대, 그리고 약간의 걱정도 함께 그득그득 차올랐다.
처음 제품을 출시했을 때, 많은 분들이 반신반의했다. 기능성 브라라고 하면 단단하고 불편할거라는 인식과 또 그 반대로 "이 부들거리는 퓨징 브라가 과연 자세를 교정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섞인 질문과 제품출시 초반의 답답하다는 후기를 마주했을 때, 제발 고객들이 딱 한달여만 꾸준히 입어봤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잠깐 입고 벗는게 아니라, 장시간 오랫동안 착용했을때 분명히 제품의 진가를 알 수 있을것이라 나는 믿어의심치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역시나 초반의 의구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첫 구매 고객들이 실제로 한달여 이상 제품을 착용해본 후 기존의 퓨징브라보다는 힘있게 몸을 감싸주고, 스포츠브라처럼 답답함이 없다는 좋은평의 후기들이 하나둘씩 계속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제품을 입고부터 어깨 통증이 많이 줄었어요.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면서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아 너무 좋아요. 저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부드럽고 편해요! 그런데도 자세가 바로 잡히는 게 느껴져요.”
“처음엔 믿지 않았는데, 입어보고 재구매하러 왔어요.”
"반신반의 했는데 정말이네요! 자세를 신경쓰게 돼요!"
"자세가 구부정한 딸에게 선물했어요. 쫀쫀한데 편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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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솔직한 반응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다음 단계를 준비할 동기를 주었다.
전문가 못지않은 고객들의 다양한 피드백은 제품의 보완점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쌓이고 쌓여진 후기는 어느새 입소문이 퍼져 한 번 구매한 고객들이 다시 찾아와 추가로 구매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온라인에서도 재구매율이 점점 높아졌다. 1차제품이 모두 완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제품의 진정한 가치가 전해진 듯한 감사함과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과 뿌듯함이 차올라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특히 이번 브라를 만드는 과정은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본질을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브라를 제작해왔지만, 이번 작업은 좀 더 특별했고, 그동안의 나의 작업들을 다시금 새롭게 돌아보게 만들었다.
디자인은 단순히 예쁘고 멋진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입는 사람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그들의 하루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세브라' 역시 그런 제품이었다. 고객들이 제품을 착용하고 자신감을 되찾으며, 건강한 자세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보람이 되었다. 많은 후기를 읽으며, 나의 디자인이 단순한 옷이 아닌, 누군가의 일상과 몸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만든 디자인의 진정한 의미였다.
디자인은 결국 마음이다. 고객들의 일상에 녹아들어 그들의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나의 제품이 필요한 곳에 적절히 쓰임을 통해 나도 성장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많은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쌓여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퇴사를 앞두고도 후임을 위해 다음 시즌의 원단을 정리하고 있다. 여러 기능성 원단을 만져보며 또 고민하게 된다. 당분간은 안 해도 될 일이지만, 또 이렇게 하고 있다. 다음엔 어떤 디자인으로, 어떤 고객의 일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시작은 언제나 고객들의 마음에 닿는, 삶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에서 출발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