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부지
아부지가 없는 삶이 사실 상상이 안된다.
진짜 남은 생이 4년여인걸까.
어딘가에 관련된 마음을 적으면 혹여나 그게 진짜가 될까봐 아무곳에도 끄적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이제는 이렇게라도 아부지를 계속 기억할 수 있게 끄적여놓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생각해보면 막 엄청 유복한 집안도 아니었고, 오히려 어릴땐 아빠의 사랑에 목마름같은게 있었던 듯하다. 경상도남자, 안동, 양반가의 둘째아들. 겉으로 사랑을 표현하기보다는 마음으로 삭히는 사랑을 했던, 표현에 늘 서툰 아빠였다. 젊은날엔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아 사랑하는 마누라에게 짜증을 밥먹듯이 냈던, 내가 볼 땐, 그냥 속상하기만 하고 불편했던 내 어린시절의 아빠.
근데 내가 성인이 되고나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엔,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아빠를 조금은 이해하고 싶었다. 10남매 형제사이에서 귀하게 컸을 법도 한 아들임에도 장남과 막내아들사이의 차남으로서 본인이 하고 싶었던 걸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마음. 세상의 치기에 무작정 18살 공수부대를 향할 수 밖에 없던 마음. 그렇게 똑똑하고 비상했던 머리로 전교수석을 밥먹듯이 했던 아빤, 그저 경상도 양반집에 차남이라는 이유로 참 많은것들을 포기하고, 비교당하고, 저지당했던 어린시절이었던 듯하다. 사랑을 많이 받았다면, 아빠가 스스로를 학대하는 마음이 조금은 덜 했을까...
아빠는 세상에 불만과 잘 풀리지 않았던 자신의 삶에 대해 늘 불만을 가지고 매일 술과 담배로 그렇게 한 평생을 사셨다. 그러한 결과는 결국 요즘 100세 시대에 아직 7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폐암4기를 판정받았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하늘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왜하필 우리 아빠냐고, 차라리 큰아빠를 아프게 하지. 아빠를 힘들게 했던 다른 형제를 아프게 하지. 대체 왜 우리아빠였어야 됐냐고 목놓아서 한참을 울었다.. 다 떠나서 이제는 정말 좀 살만한 시기가 되었는데,, 그토록 아부지 자신이 그려왔던 삶에 조금씩 사랑과 평온과 여유를 쌓아가고 있던 순간에 참 야속하게도 그렇게 세상은 아부지와 우리가족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참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난 2년여다. 지금껏 벌써 2년이 넘는 아부지의 투병생활이 이어져오고 있다.
근데 요즘 아부지가 부쩍 많이 기력이 쇠하고, 그 좋아하는 음식들도 마다하시는걸 보니 여러가지 참 많은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그냥 아부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2년이란 시간동안에 일들을 일일이 다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 암환우와 그 가족들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에 그냥 여기에는 쓰고 싶지 않다. 사랑을 받지못해서 가슴속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랐던, 속정만 깊었던 그럴수밖에 없었던 아빠의 일생이 안쓰럽기도 하고, 마음아파서 그간에 원망들은 그냥 먼지처럼 다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그냥 다 이해한다는 말이 맞을까.
그냥 늘상 걸릴 수 있는 감기처럼, 아빠의 암도 더이상 나빠지지 않고, 그냥 이대로, 아니 조금만 더 건강하게 회복되서 아빠가 끔찍이도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두분 다 건강하고 오붓하게 평생을 백년해로 하셨음 좋겠다. 정말 간절히 간절히.
나 아직 결혼 안했는데. 내동생도 아직 결혼 안했는데. 결혼식때 꼭 아빠 팔짱끼고 입장하고 싶다.
아빠, 나랑 둘째꼭지랑 합동결혼식 해도 되니까, 아빠팔짱 꼭 끼고 결혼식 입장하고 싶어. 그니까. 더이상 더 나빠지지도 말고 아프지도 마. 응?
운전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아부지. 좀 더 안전하게 타시라고 새차를 뽑아드렸다. 돈이 막 엄청 많아서 차를 뽑아 드린건 아니다. 십년이 넘은 기존 차량은 여기저기 조금씩 손볼 데가 많아졌고, 혹시라도 홀로 차량을 운전하시다가 문제가 생길까 너무 걱정됐다. 그저, 운전대를 놓는 그날 까지 좀만 더 안전하게 차를 운전하셨음 좋겠어서 서프라이즈로 새차를 뽑아드렸다.
표현이 서툰 아부진데도 처음 차를 보여드렸을 때, 운전석에서 내리질 않으셨다. 한참을 운전석에서 핸들을 만지시며 '비쌀텐데, 비쌀텐데,' 멋쩍게 말씀하시곤 빙그레 미소짓던 아부지 얼굴이 선하다. 앞으로 이 차로 병원도 가시고, 엄마랑 마트도 가고, 회사도 가고, 안전하게 운전하시라고 했는데..
이 새 차를 몰고 아직 운전을 제대로 한번을 못하셨다. 어지러움증이 심해져서, 몸에 힘이 없어서 운전을 당분간은 당장 하시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예전엔 그렇게도 운전하지 마시라 했었는데, 본인이 하고싶은 만큼 운전을 그간 해오신게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근데 아직, 핸들 클락션에 붙여진 새차 비닐을 떼지 못했다. 그냥 그것만큼은 아부지가 다시 운전을 하시게 됐을때, 아부지 차니까 아빠가 직접 꼭 떼고 운전을 하셨음 해서.
새아파트로 이사오고 난 뒤에 앞뒤로 뻥 뚫린 베란다 너머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매일 아침 안방 침대정리를 호텔방처럼 반듯하고 깔끔하게 매무새를 정돈했던 아빠의 단단한 어깨가, 힘있던 뒷모습이 그립다..
단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이별이고 겪고 싶지 않은 이별의 순간이 언젠간 올 그때가 나는 솔직히 무섭고 두렵고 싫다. 너무너무 슬플거니까.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어.. 누군가는 마음 어딘가 아주 깊은 한구석에 조금씩 마음에 준비를 하라곤 하지만. 아직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부지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 여느때와 다름없이 까불고, 웃고, 떠들고, 아부지 드릴 3:1 비율의 건강한 야채스프를 만들것이다.
주님이 지켜주실거니까.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라는 기도문같은 주문을 끊임없이 외우며.
그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솔직한 마음을 처음으로 글로 끄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