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나가자!
아내와 살면서 여행하면서 느꼈지만, 가족과 같이 있으면 어딘가 나가고 싶다. 10대 시절부터 방콕 겜돌이로 살아와서 혼자서는 며칠이고 집에서 컴퓨터와 살 수 있고 그게 편하고 좋은데 신기하게도 아내와 같이 있으면 집 밖에서 뭔가 하고 싶다. 특히 여행을 가면 이 욕망이 극대화되어 아내를 끌고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걷고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일정을 만들기 일쑤(...). 혼자서는 나갈 생각이 안 드는데 왜 아내랑 같이 있으면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이런 흐름이 아닌가 싶다.
1. 좋은 거를 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2. 새로운 경험을 같이 하는 게 영 좋아 보인다.
3. 이왕 하는 거 뽕을 뽑고 싶다(...).
동기는 아내로부터 나오지만 결론은 내 욕심대로 신나게 논다는(...). 여하튼 그래서 아내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내외 이곳저곳 많이 다녔다.
짠짠이가 생기고 나서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여행과 외출에 대한 생각을 살짝 봉인했는데 짠짠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걸 보니 같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얘는 뭘 하든 모든 게 다 처음 아닌가. 그리고 어릴 때는 보고 듣고 한 것들도 금방 잊히니 할 때마다 새롭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아들을 둘러업고 어디라도 가서 보여주고 싶더라. 하지만 100일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 그래도 아주 소소하게나마 아들과 다녀보았다. 사실 아들은 별생각 없었을 텐데 내가 항상 신났던 거 같기도(...). 결국은 이번엔 아들 핑계로 내가 열심히 놀았다.
1. 동네 산책
가장 많이 다닌 곳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와 근처 공원이다. 공원은 몰라도 아파트 단지 놀이터가 무슨 산책 씩이나 되겠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아들에겐 미지의 세계인걸. 아들은 집 밖으로 나가면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신기한 듯이 눈이 커진다. 목을 가누고부터는 이리저리 둘러보고 옹알이도 하고 신이 난다. 집 앞 공원에 가는 5분 거리에서 지나는 아파트 상가, 담벼락, 가로수 등등이 지나갈 때마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들. 나는 네가 제일 신기하다.
다행히 올해 여름은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아서 주말에 틈만 나면 아들을 데리고 산책 나갔다. 나는 아들이랑 바람 쐬어서 좋고 아내는 혼자만의 시간이 생겨서 좋고 일석이조.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이랑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항상 콘텐츠 부족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산책하는 게 시간도 잘 가고 좋더라. 항상 공원을 싹 돌아보고 오길 원하지만 아들 컨디션이 허락하지 않아서 후다닥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아파트 단지 놀이터 도는 걸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배가 고프고 잠이 오고 응가를 하고 그냥 짜증이 나고, 급히 집으로 향해야 하는 상황은 많다. 이렇게 아들이랑 나가는 건 여러모로 제약이 있어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하는 걸 늘려보는 재미가 있다.
2. 병원, 마트, 동네 카페, 식당
이런 생활 밀착형 장소를 외출로 쳐야 하나 싶겠지만 신생아 아들과 함께라면 나름 거한 나들이가 된다. 우선 나가기 전에 준비할 게 많다는 것부터가 거한 외출의 시작. 아들의 손수건, 기저귀, 여벌 옷, 쪽쪽이, 싸개 등등 한 짐이 기본 세트가 된다. 옷만 대충 걸쳐 입고 가볍게 나가는 외출은 이제 안녕. 아기를 데리고 차를 타는 것 자체가 일이다. 차 뒷좌석 하나는 카시트가 차지하고 조수석의 아내도 뒷좌석에서 아들 전담마크, 조수석에는 아들 짐이 자리 잡는다.
이렇게 바리바리 번거롭게 준비해서 가는 곳이 차로 10분 이내에 있는 병원, 마트, 식당이다. 첫 드라이브는 필수 접종을 위한 병원이었는데 조리원에서 처음 집에 오던 날처럼 긴장 되지는 않더라. 이거 왠지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진료 끝나고 아들이 잠드는 분위기길래 근처 식당까지 진출해봤다. 아들 나오고 나서 첫 외식, 유모차에 아들을 동반한 첫 식당 방문, 즐겁고 신기했다.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주말마다 외출을 시도했다. 가장 만만한 게 마트와 카페. 대형마트에서 장 보는 걸 즐기는 편인데 아들이랑 같이 가니까 더 재밌다. 특히 시식 코너 아주머니들에게 인기 만점인 우리 아들 덕분에 신나게 시식으로 배를 채웠다(...). 마트는 물건도 많고 사람도 많고 알록달록 형형색색에 온갖 냄새가 나니 아들도 흥분되는 모양인지 신나서 두리번거린다. 아들을 둘러업고 마트를 헤집으며 이것저것 물건 보여주는데 맥주 골라담으며 보여주는 게 제일 신난다. 아들이랑 술 먹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3. 백화점
동네 외출의 최고봉은 백화점이다. 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백화점이 있는 것도 이 동네로 이사 온 이유 중 하나였는데 아들이 나오고 나서 그 장점을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원래부터 백화점은 편리하고 고급지고 볼거리 많은 곳이었지만 이렇게 아기 친화적인 공간인 줄은 몰랐다. 기저귀 갈고 먹이고 간단히 씻기고 이런 일종의 정비가 백화점 수유실에서 모두 가능했고 심지어 시설도 좋다. 아들과 처음으로 백화점에 간 날, 아내는 백화점과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나도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백화점에 대한 호감이 확 올라간 게 사실이다.
아들과 백화점에 간 첫날, 우리 모두 너무 신나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문화센터도 가봤다. 예전에는 백화점 문센이라는 게 있다는 것만 알았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참 재밌는 일이다. 이제 3개월이 된 아들이랑 할 프로그램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베이비 마사지 수업이 있다길래 바로 등록. 넓은 방에 아기와 엄마 아빠가 빙 둘러앉아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마사지를 하는 40분짜리 수업이었다. 3개월짜리 아기들이 얌전히 수업을 들을 리가 있나. 누군가 울기 시작하면 전방위적으로 울음이 전파되는 풍경이라니. 너무 웃겼다. 수업은 유익했지만 아주 잘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고 오히려 다른 집 아기들 보는 게 재밌었다. 비슷한 월령에도 모습은 가지각색인 게 신기했다.
이렇게 아들과 백화점을 가보니 백화점에 유아/어린이 동반 부모들이 많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봐도 애 있는 가족들에게 백화점같이 만만한 외출이 또 어딨겠나 싶다. 예전에도 다녔던 백화점이지만 아들과 오니 완전히 다른 곳으로 느껴진다. 이게 아들이랑 같이 다니는 재미인가 싶다.
이렇게 집에서 1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소소한 외출 아이템들을 조금씩 섭렵하면서 서서히 더 큰 야망을 가지게 되었다. 아들이 크는 속도와는 상관없이, 좀 더 먼 곳으로, (내가) 더 재밌는 곳으로(...). 아직도 노는 게 좋은 철없는 아빠의 욕심은 끝이 없다. 다음엔 어디로 진출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