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우 씨의 테이블 매트는 항상 싱글
오늘은 사이버러버 재우 씨가 안주도 없이 하이볼만 주문합니다. 종지에 마늘 튀김을 조금 덜어줬어요. 지갑도 배고픈 대학생. 휴학과 공익, 복학과 알바, 편입과 유학을 준비하는 바쁜 가운데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인연을 기다리며 언제나 애틋한 연애를 꿈꾸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함께 지켜봤고 함께 기다렸어요. 최근에 발길이 뜸하다 싶더니 게임을 통해 알게 된 그녀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새콤달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한사코 만나길 거부하는 그녀. 그러다가 다투게 되고 오늘은 자신을 차단했다고 합니다.
짝사랑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면, 이번에는 발사는 되었지만 터지지 않은 총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헛방’입니다. 지난번 고백하지 못한 그의 짝사랑도 저는 함께 보냈었습니다. 재우 씨의 평소 성격을 생각한다면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그래서 더욱 희망을 가졌을 테니 오늘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지금 그는 가슴 시린 사랑을 통곡하며 떠나보내고 있으니까요. 재우 씨는 아까부터 알알한 마음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매트 모서리만 접었다 폈다 괴롭히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여성분이 자꾸만 신경 쓰였는지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 나갑니다. 그래요 오늘은 그냥 내버려 둬야겠어요.
고등학생 둘이 들어옵니다. 이 학생들을 볼 때마다 한 십오 년 산 부부처럼 너무나 서로에게 자연슬럽고 익숙하게 서로를 대하는 모습 때문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란성쌍둥이라는 말을 듣고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메뉴를 고를 때도 취향도 비슷하고 문제가 있을 땐 쉽게 조율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이 남매가 오늘은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요. 항상 둘이 짝지어 밥을 먹으러 다니는 친구들이 있는데, 서로 사귄다는 누나의 주장과 그저 베프라는 동생의 주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저도 아는 학생들입니다. 이곳에도 밥을 먹으러 오거든요. 둘 다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은데 그나마 여학생이 용기를 내어 툭 한 마디씩 던지면 조곤조곤 대화가 이어지던 친구들입니다. 쌍둥이들은 라멘 국물이 식고 면이 불고 있는데도 논쟁이 계속됩니다. 보다 못한 제가 정답을 얼른 알려줍니다,
“아직까지는 남학생이 혼자 좋아하고 있는 거야”
이 식당에는 혼자서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일렬 다찌가 있어요. 자리마다 테이블 매트가 깔려 있고 매트와 매트의 간격은 옆 손님과 식사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습니다. 이 테이블 매트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특별한 주문을 걸어 놔서 엄마의 매트가 아이의 방향으로, 서로 사랑하는 연인의 매트는 가운데로 모여집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읽은 테이블 매트는 옆으로 옆으로, 슬금슬금, 저절로 저절로 움직여요.
“… 그러니까. 식사를 하고 나간 자리를 보면 항상 남학생의 테이블 매트가 여학생 쪽으로 움직여 있거든” 남매는 엄지 척을 하며 “아저씨 인정!” 그리고 꿈쩍하지도 않고 처음 그대로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들의 매트를 저에게 보여줘요. 나도 오케이 하며 “찐 남매 인정!"
사이버러버 재우 씨가 다 듣고 있었나 봐요. 좀 전에 나간 여성의 테이블 매트를 힐끔 쳐다봅니다. 등을 돌리고 식사를 한 듯 확연히 멀어져 있네요. 재우 씨는 저를 보더니 쓴웃음을 지어요.
아~ 재우 씨의 테이블 매트는 항상 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