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부터는 가족이라고 불러야죠
한결같이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더니 결혼을 했답니다. 신혼집이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서 예전처럼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서너 달에 한 번은 연애시절의 추억이 있는 이곳에서 카레우동을 드세요. 이 커플은 연애 시절부터 이 상가 사장님들은 다들 알고 있던 예비 잉꼬부부였습니다. 한 번은 카레 소스를 사기 위해 남자분이 혼자 오신 적이 있는데, 항상 곁에 있어야 할 여자분이 안 보이니 제가 다 허전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에게 소울푸드라면 부산 서면의 학원가에서 먹던 라면. 늦은 끼니를 챙기는 학생에게 묵은 밥을 함께 내주시던 정 많은 사장님 때문에 저는 항상 배가 든든했었습니다. 소울푸드는 안식도 얻을 수 있고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색다른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너희들 수능 일주일 전부터는 여기서 밥 먹지 마!’ 면이나 기름에 튀긴 것이 많은 이 식당의 음식 때문에, 큰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 탈이라도 날까 미리 말해 둡니다. “에이 아저씨~ 원래 먹던 거 먹어야 소화가 잘된다니깐요” 녀석들이 저를 불안 불안하게 만들어요.
이제 대학생이 되어 오랜만에 찾아와서는 ‘아저씨 홍대에서 라멘을 먹었는데 너무 느끼해서 남겼다니깐요!’ ‘이 친구(애인)에게 우리 카레 맛보게 해 주려고 데려왔어요’ 우리… 카레… 학창 시절부터 여기서 밥을 먹었으니까.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은 라멘이 이곳일 테니까. 그리고 곳곳에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니까. 이들에게 원조는 바로 여기입니다.
오늘 휴가라며 낮에 찾아온 커플은 분위기가 평소와 다릅니다. 특히 여자분이 왠지 피곤해 보여요. 키오스크 주문도 번거로운지 남자에게 부탁하고는 자리에 먼저 앉아요. 그리고 주저 없이 “오빠 나는 따뜻한 둥굴레차” 이제 남편이 된 남자는 뭐가 그리 불편한지 안절부절. 조심조심. 평소와는 다른 뭔가 수상한 기운을 저는 느낍니다. 오늘도 뉴스보이 율이가 킥보드를 타고 또 다급하게 새 소식을 전합니다. “아저씨 오늘 2시 20분에 민방위 훈련한데요!” “아 고마워! 모르고 있었네. 율이 아니면 큰일 날뻔했어!” 율이는 다시 사라집니다. 그리고 커플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율이 에게 흐뭇한 관심을 보여요.
"혹시…."
저는 짐작되는 게 있어 조심스럽게 여쭈었어요. 역시 반가운 소식을 전합니다. 알고 보니 둘이 아니라 오늘부터는 태아까지 세분의 손님으로 오셨네요. 이제 커플이라고 하면 안 되겠어요. 셋부터는 가족이라고 불러야죠. 그리고 오늘 뱃속의 아기가 처음으로 카레우동을 먹었고요. 너무나 감사한 일. 너무나 행복한 일. 그리고 너무나 신기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