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걸 낭만이라고 이야기하죠
마카롱 자매에게서 콜이 왔습니다. “2번 테이블에서 까다로운 주문이 들어왔는데 이미 ‘서빙 딜레이’가 일어났습니다.” 만약 수술실이라면 ‘테이블 데스’와 마찬가지의 응급상황입니다. 손님의 적당한 배고픔과 기대가 최고치일 때 따뜻한 음식이 나가야 합니다. 맛의 50%는 식사하는 환경, 허기의 정도, 음식의 온기가 좌우합니다. 우리 모두가 장금이의 혀를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주방에 도착하니 뉴스보이 율이는 바닥에 쏟아져 구르는 양파를 줍고 있고, 사이버러버 재우 씨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가츠동을 어떻게든 살려 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마카롱 자매는 어쩔 줄 몰라하며 안절부절. 먼저 주문 차트를 확인해요. ‘카레라이스는 적당히 되직하게, 가츠동은 소스가 자작하게~’라고 메모되어 있습니다.
홀로 열린 작은 창을 통해 2번 테이블을 보니, 이 동네에서 꽤나 유명하다고 소문난 맛집 인플루언서 커플이 앉아 계시네요. 여성분은 스마트폰을 남성분은 미리 꺼내어 카메라를 꺼내 만지작대며 지루한 표정으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예전 ‘아사쿠사도시락’의 기억을 떠 올립니다. 하지만 그때의 제가 아닙니다. 곧 상황 수습을 위한 지휘가 시작됩니다. “율이는 2번 테이블에 치킨가라아게 5피스를 서비스하도록. 꼭 홀수이어야 해! 그리고 레몬 소스는 별도로. 너무 허기지면 식욕이 사라지니 레몬의 산 성분이 도움이 될 거야!” 재우 씨는 카레소스 350cc를 중불에 계속 젖고 있어. 졸여질 때마다 육수 10cc를 반복해서 넣어. 걸쭉한 것과 되직한 거는 다른 거야. 잊지 마!”
“큰일 났어요! 돈부리 소스가 너무 자작하니까 돈가스가 너무 눅진해져요” “자매님들, 저분들은 여러 맛집을 다녀 본 인플루언서예요. 바삭한 튀김이 올라 간 음식을 원했다면 텐동 전문점을 찾아갔겠죠. 우리 한번 믿어 봅시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예요.” 마카롱 자매를 안심시켜요.
그때 카레소스를 쉬지 않고 젓고 있던 사이버러버 재우 씨의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고 있습니다. 마침 가라아게를 서빙을 하고 돌아온 뉴스보이 율이가 “손 바꾸겠습니다!”를 외치며 카레 주걱을 넘겨받습니다. “율이는 멈추지 말고, 재우 씨! 마지막으로 육수 15cc 추가하고 약불로 5분간만. 자매님들 튀김기 온도는 10도 더 올린 후에 돈가스를 앞뒤로 뒤집어 가며 20초 추가~” 다시 2번 테이블을 살피니 내 계획대로 마지막 남은 치킨가라아게를 한 개를 서로 먹겠다며 다투고 있습니다.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돈부리 팬에서 소스가 넘치고 있습니다. 저는 다급한 목소리로 자매님들을 향해 “키친타월 주세요! 더 주세요!! 많이 주세요!!!”
저의 섬세한 지휘로 주방은 다시 정돈되어가며 카레라이스와 가츠동이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야 한시름 놓은 우리는 서빙카트를 홀로 통하는 주방문까지 함께 배웅을 했어요. 테이블 위에 음식이 놓이자, 역시 이들은 수저보다 스마트폰과 카메라에 먼저 손이 갑니다. 위에서 한 컷, 옆에서 한 컷, 손가락 브이 하며 또 한 컷.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행복한 미소로 엄지 척하며 마지막 한 컷. 그리고 다시 진지해지더니 한 술을 조심스럽게 떠드세요. 음미합니다. 그리고 만족한 표정을 서로 지으며 식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십니다.
식사가 마무리될 즘 저는 손님 곁으로 다가가 직접 둥굴레차를 따라 드리며, 음식은 마음에 들었는지, 부족한 건 없는지를 살펴드려요. 그런데 갑자기 남자분이 “사장님 실력은 익히 들어서 알지만, 고작 만 원짜리 카레라이스와 가츠동에 이렇게까지 신경 쓰시는 건 너무 과도한 거 아닌가요?” 유명 인플루언서의 도발 같은 것일까요? 저는 '짜리'라는 단어가 신경에 거슬려 불쾌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내 식당. 저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걸 전문용어로 개멋부린다고 그러죠. 아!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고 하죠~ 그리고 카레라이스는 만 이천 원이거든요! 하하하~” 밖을 향해 돌아서며 앞치마 속의 전자담배를 확인했습니다. 저도 긴장했었나 봐요. 그리고 ‘멋짐’을 뚝뚝 흘리며 식당을 빠져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