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삶을 살아보다
아빠 육아휴직을 내겠다고 한 날, 꼰대 라떼(?)를 한 잔 마시며 말을 걸어주는 선배가 있었다. “어이~한 과장! 육아휴직하면 애들 어린이집인가 유치원인가 보내지 않나? 보내고 나면 죽 쉬는 거잖아. 잘 쉬다 오게. 부럽구먼."
“선배님. 아내 말로는 하루하루 독박 육아한다고 심신이 지친다고 하던데요? 아이들을 원에 보내도 엄청 바쁘데요!”라고 대답을 하였지만, 아내의 삶을 단일주일이라도 살아보지 않아서 자신감 있게 맞받아쳐주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회사를 다니며 바쁠 때는 야근도 하고, 회식이 있을 때는 늦게 들어와 밤에 몰래 거실에서 자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오로지 일을 하고, 집안 경제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책임진다는 핑계로 내 위주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육아휴직. 하루하루 지내며 샐러리맨이었다가 전업주부가 되어 독박육아를 했던 아내의 삶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가꾸는 수준이 많이 낮아지는데, 늘 비슷하고 편한 트레이닝복 같은 복장과 아이들 성화에 때 맞춰 씻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물론, 밥 먹는 시간의 대부분을 아이들 먹이는 데 투자를 하니, 정작 내가 든든하게 먹을 시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이 자주 아파서 잠도 푹 못자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육아보조자(조부모 등)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지만, 그럴 가정형편도 되지 않았다.
불안정한 의식주 생활이 반복되니 심신이 지치고, 자존감이 바닥치는 건 금방이었다. 나름 나도 회사에서는 중간관리자였는데, 집에서는 관리라는 것이 통하지가 않았다. 무조건적으로 아이들 세상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행해야만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