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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ptembark 9시간전

주저앉은 아빠

가장의 무게



오늘 새벽, 아빠가 화장실에 가다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의식은 있으셨지만 혼자서 몸을 가누지 못하셨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고 극심한 어지러움까지 호소하셨다. 새벽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사태에 아빠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직전에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접어야 했을 때, 여의도 한복판에서 쓰러지신 적이 있다. 그때는 병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때문인 것으로 판명되어 큰 문제없이 넘어갔었다. 지금은 이렇게 가볍게 이야기하지만, 할머니도 갑자기 쓰러져서 돌아가신 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에게는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아빠는 강인한 체력을 가지신 분이 아니다. 키는 170cm 초반에 몸무게는 50kg 후반으로, 굉장히 가냘픈 체형이다. 마치 바람에 휘청이는 갈대 같다. 오히려 이런 몸마저 항상 ‘살이 쪘다’라며 자조하신다. 운동을 강하게 하시지 않다 보니 근력이 거의 없고, 집에 와서 10분에서 20분 자전거를 타는 게 전부이다.


가냘픈 몸으로 매일 한 시간 반 가까이 되는 거리를 지하철로 출근하신다. 역에서 역까지의 도보는 총 30분에 달한다. 매일 하루 8천 보 이상을 걷는다고 하신다. 거기에 나이 든 몸과 회사에서 임원으로서 받는 스트레스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고통일 것이다. 그걸 매일 짊어지는 게 가장의 무게라고 짐작해 본다.


돌이켜보면 어제 전조가 있었다. 아빠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비교적 늦은 시간에 출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잠을 푹 잤는지는 아빠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내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잠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은 걸 보면 평소보다 잠을 못 잔 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주저앉아 토를 하시고 부축을 거부한 채 비틀거리며 넘어지시기도 하셨다. 엄마와 내가 양쪽에서 간신히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 결국 오늘 출근을 하지 못하셨다. 새벽 시간이라 바로 병원에 가지 못했고, 119를 부를까 생각해 보았지만, 유난을 떠는 것이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리는 아빠의 특성상 오히려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 같았다.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엄마와 아빠 모두 응급실에 가겠다는 말을 거절하셔서 결국 참았다.


10시 즈음에 아빠는 정신이 드셨다. 하지만 침대에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신다. 마치 바다 위의 난파선처럼 무력해 보이신다. 다행히 회사에는 말을 해두셨다고 한다. 이조차도 초인적으로 느껴졌다. 깨어난 뒤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구역질을 하셨다. 당장 등 뒤에 있는 스마트폰도 집지 못해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내가 조심스레 점심을 먹을 즈음, 한 시가 되어서야 아빠는 조금씩 말을 하셨다. 평소였다면 시끄럽다면서 불평을 하셨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오랜만에 아빠에게 안마를 해드렸다. 엄마는 매일 저녁마다 ‘다리’라고 외치며 안마를 시키곤 한다. 엄마의 다리와 비교했을 때, 역시 아빠의 다리는 더 가냘프다. 엄마는 매일 수영을 하기도 하고, 아빠보다 많이 먹기도 해서 기본적인 체력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여전히 귀는 안 들린다고 하셨다. 귀가 안 좋으니 어지럽고 균형을 잡기 힘들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여전히 119를 불러서 큰 병원을 가는 것은 주저하셨다. 낮 동안에도 다시 소리 없이 잠에 드셨다.


아빠와 엄마가 동시에 있음에도 TV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이 적막이 이상하면서 두려웠다. 기묘하고 조용한 어색함만이 우리 집 안 공기를 가득 채웠다. 무섭기까지 했다. 문소리가 나면 으레 아빠가 일어났는데, 이어지는 움직임이 없는 순간에 제일 소름 끼쳤다.


5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어떻게 부축해서 동네 이비인후과에 부모님과 같이 갔다. 이야기를 하고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나는 들어가지 못해서 정확한 상황이나 검사 결과는 알지 못하고, ‘돌발성 난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까지 원인이 불명확한 거구나 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니 추가로 검사가 필요하겠지. 돈이 없는 형편에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대학 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조차도 아빠에겐 스트레스 일 것 같다. 약은 처방받고 식사는 따로 지시해 준 사항이 없이 편한 대로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대학 병원 예약 시도를 했으나 늦은 시각이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서둘러 예약해봐야 할 것 같다. 돌아올 때에도 여전히 부축이 필요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회복이 되고 있다. 지금은 혼자 힘으로 소파에 앉아계신다.  


어떻게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이 글을 공개적인 곳에 올리는 것이 맞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쓰고 싶은 욕망을 멈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위로를 받고 싶고, 불현듯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리고 그냥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아빠가 빨리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빠를 대신해 수익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청년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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