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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븐 Dec 16. 2024

누가 나를 구해주세요

SNS 속에서 방황하는 나

SNS로 보내는 SOS 신호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열고, 쉴 새 없이 스크롤을 내리는 동안 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러간다. 때로는 누군가 카페를 다녀오고 어떤 커피를 마셨넌지에 대해 감탄하거나, 검색을 하려다가 아래에 추천해준 영상을 보면서 잠깐 가짜 휴식을 가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뒤에는 어딘가 허전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SNS는 나에게 무엇일까?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도구일까, 아니면 더 깊은 무언가를 대체하려는 시도일까?


'인스타를 끊겠다고 하면서 아직도 인스타 스토리 올리고 있네?'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매일 인스타 스토리만 3회 이상 올리고 있다. 왜 올리냐. 그냥 누가 보면 좋겠다고 나를 알아봐 주세요. 이건 간절한 SOS 신호나 마찬가지이다. 가끔씩 좋아요가 눌리는 것을 보면 그런 나의 SOS에 응답을 받는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슬프게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허전한 마음에 침대를 나서기 힘들어 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혼자겠지라고 하면서 말이지. 





진정한 인간관계란 무엇인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누군가의 근황을 실시간으로 알게 되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가 얼마나 깊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직접 만나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편리함 뒤에는 진정한 관계 형성의 어려움이 숨어 있다. SNS를 통한 만남은 표면적일 때가 많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 거리나 빈도가 아니라, 서로에게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다가가느냐에 있다.


가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며 사람들의 만남 방식을 분석한다. 사람들은 대개 직장 동료보다는 다른 경로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듯하다. 물론 사내 커플처럼 남들에게 알리기 껄끄럽고 조용히 교제하는 이들도 있겠지. 이런 관계는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스토리를 올릴 때, 단순히 하루 독서를 하며 좋았던 문장이나 오늘 마신 커피에 대해 올리듯, 사람들도 자신의 일상을 일부만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만남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SNS를 보며 단편적인 단서를 통해 그들의 삶을 상상하거나 해석할 뿐이다. 


독서 모임과 커피 모임 등에서 사람들과 어울려보려 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 결과는 늘 서글펐다. 사람들 사이에서 친해질 수 있다는 희망은 언제나 어색함과 거리감으로 끝났고, 그 틈 사이에서 나는 늘 구석에 몰려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무리들은 어디선가 떠들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소리에서 멀어져 혼자만의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말 할 기회가 오면 입스에 걸린 스트라이커처럼 말을 골대 바깥 하늘로 쏘아올릴 뿐이었다. 내가 대화의 흐름을 잘못 읽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사람들과의 간극이 이미 너무 커져버린 걸까. 사회화의 첫 발이라 할 수 있는 학교에서의 시간은 허탕으로 아니 지독한 괴롭힘을 당하며 끝나버렸다. 


인스타로만 먼저 안 관계에 대해서는 먼저 인사를 건네지도 못한다. 이 사람은 나를 알까. 나의 사진을 직접 올리는 경우가 없어서 항상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봐. 실제 이름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나를 소개해야하나 난감함을 가지고 멀뚱멀뚱 거리다가. 상대방이 먼저 인사를 건내기를 내심 기다린다. 


단편적인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는 나는, 마치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는 투명한 유리 조각 같았다. 그 유리 조각의 날카로운 부분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까 내심 두려워하면서도, 연결에 대한 갈망은 멈추지 않았다.


화면 너머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닻 없는 배처럼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읽음 표시를 확인하며 초조하게 떨리는 손가락, 답장을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들. 때로는 내 존재를 강요하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끊임없이 연결을 시도하는 나의 모습은 분명 현대인의 디지털 고독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과 진정한 관계와 대화를 할 수 있는걸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스스로 답을 찾으려 해보지만 정답도 오답도 내지 못한다. 내가 문제인 건지, 아니면 단순히 사람들과 맞지 않는 건지조차 헷갈린다. 어쩌면 나는 관계라는 퍼즐을 맞출 조각들을 오래전에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혼자서 이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SNS 술과 담배와 같은 걸지도


가끔은 SNS가 술이나 담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둘 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하지만,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SNS는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그 중독성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술과 담배는 규제를 통해 어느 정도 통제되지만, SNS는 아직 그렇지 않다.


최근 일부 국가에서는 SNS 사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프랑스는 2023년, 미성년자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미성년자가 하루 2시간 이상 SNS를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보호자가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인스타그램은 유럽연합(EU)의 압박에 따라 18세 미만 사용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광고를 금지하고, 사용 시간을 추적해 알림을 제공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SNS를 단순한 소통 도구 이상으로 바라봐야 함을 시사한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SNS에 대한 규제가 뚜렷하지 않아서 술 문화가 펴져 있는 것과 같이 경각심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보이기까지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6TbfARGgFfY




SNS를 피할 수 없는 이유


그럼에도 현대 사회에서 SNS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의 정보가 SNS를 통해 전파되며, 사회적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SNS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심지어 많은 직업이 SNS 상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거나 유지된다. 예컨대, 인플루언서, 마케터,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SNS 없이는 자신들의 활동을 이어가기 어렵다.


또한,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한다. SNS는 이러한 연결 욕구를 충족시키는 즉각적이고 쉬운 방법을 제공한다. 메시지를 보내거나 댓글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진정한 인간관계의 본질이 희석되기도 한다. 우리는 '좋아요'나 팔로워 수와 같은 가시적인 지표에 집착하게 되며, 그러한 수치가 우리의 관계의 깊이를 대표한다고 착각할 위험이 있다.


SNS는 현대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에 놓여 있다. 스크롤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휴대폰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 진짜 대화를 나눌 것인가? 나는 스크롤을 선택하다가도 진짜 대화를 갈망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 갈등은 단순히 하루를 보내는 방식에 대한 고민에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인간관계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오늘도 나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머뭇거린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이 고민의 해답을 찾아보려 노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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