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카페쇼(이하 카페쇼)를 다녀오며 20만 원어치의 원두를 구매했다. 선물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 몫이었다. 카페쇼에서 블랙 프라이데이처럼 최저가로 원두들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많이 들어오는 국내 최대의 커피 관련 박람회이다 보니, 이번엔 해외 로스터리의 원두를 집중적으로 골랐다. 국내의 로스터리는 가격이 조금 오르더라도 나중에 원한다면 구매할 수 있지만, 해외는 구매가 번거롭거나 불가능 한 곳이 많다. 해외 로스터리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물류비의 영향과 해외로 넘어서는 영향력을 가진 유명세가 컸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 비용을 들인 것이다.
카페쇼 라카브라 부스에서
공들여 산 원두들은 한 달 만에 거의 바닥이 났다. 전에는 나눔도 하고 여유 있게 소비했는데, 이번엔 전적으로 나 혼자만의 소비였다. 원두봉투를 비워갈 때마다 후회가 조금씩 쌓였다. 또 커피는 기한이 넉넉하기는 하지만 개봉 한 이후에 한 달에서 두 달 내외로 소비해야 했다. 이후로는 맛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냉동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따로 소분할 용기도 없었고, 냉동고 안에 나만의 공감도 없었다. 빠르게 소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비싸게 샀는데 제대로 맛을 느끼지 못하면 아쉽지 않겠는가.
더욱이 커다란 기대만큼 뚜렷한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커피 수준이 높다고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곤 했다. 비록 세계 최고까지는 아니지만, 국제 커피 대회에서 한국 국적 또는 재외동포 바리스타들이 줄곧 뛰어난 성과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해외 원두들 위주로 마시면서 로스팅 성향가 있지만, 국내 로스터들이 크게 꿇리지 않음을 꺠달았다.
이거 너무 과소비 아니었나.
내 수입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기호식품인 커피에 쓰다니 제정신인가. 물론 커피에 관심이 있고 나중에는 혼자서라도 콩을 볶고 싶기에 일종의 공부라는 위안을 삼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아직까지 커피를 통해서 돈을 버는 건 거의 없었으니까. 핑계에 불과하다.
지난달의 과도한 소비를 돌아보며, 이번 달에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러한 결심은 단순한 재정적 절제를 넘어, 나의 소비 패턴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였다.
올해 봄까지 약 2년 동안, 나는 특정 로스터리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며 월 3만 원으로 만족스러운 커피 생활을 이어갔다. 이 선택은 경제적이면서도 안정적인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커피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점차 깊어졌고, 자연스럽게 더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원두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현재는 해당 로스터리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지만, 매장을 자주 방문하며 잔으로 커피를 즐기고 있다. 구독을 중단한 이후에도 매달 출시되는 원두 3종 중 2종은 꼭 맛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소비 증가가 아니라, 나의 미각과 취향의 진화로 볼 수 있다. 커피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더 복잡하고 섬세한 풍미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본질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소비하는 커피는 여전히 기타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사치에 불과하다.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일상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적인 선택이라는 점이다.
다짐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12월을 맞이하며 여러 로스터리 카페에서는 연말이라고 특별 원두들과 이벤트들을 한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고가의 원두들이 풀리기도 했었고, 겨울 혹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로스터리마다 특별한 블렌딩 커피들을 올려두었다. 구매를 하면 추가로 소량의 상품이나 원두를 주는 이벤트들도 있었다. 너무 소비를 하면 안 된다는 마음과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계속 줄다리기 중이다.
결국 나는 스스로 소비의 기준을 정하기로 했다.
200g 기준 2만 5천 원을 넘어서는 금액으로는 사지 않겠다. 커피를 마시는 양이 전보다는 늘어서 웬만하면 소비를 하겠지만, 미미한 아르바이트비만 벌고 있는 내게 기호식품인 커피에 과소비를 하는 건 큰 사치다.
연말의 다양한 가성비 판촉 이벤트와 유혹적인 원두들 사이에서, 나는 구매 충동을 제어하기 위해 장바구니라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는 나의 욕망을 시각적으로 관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별도의 목록 작성이 번거롭긴 했지만, 대부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열어둔 상태였기에 장바구니에 담아두면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그렇게 12월 이후 2주가 지난 현재, 네이버 쇼핑 장바구니에는 7개의 다른 로스터리에서 구입한 20만 원어치의 원두가 가득 쌓이게 되었다.
장바구니 속 욕망과 이성의 투쟁
장바구니를 열 때마다 작은 전쟁이 시작된다. 리스트 속 원두들이 한 줄씩 화면에 떠오를 때, 내 안의 두 목소리가 격렬하게 맞붙는다.
욕망은 달콤한 속삭임으로 나를 유혹한다. 각 원두의 맛과 향을 떠올리며, 내가 아침마다 손수 내릴 커피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면 그 순간 화면 속 장바구니는 마치 전시장이 된다. 라벨에 적힌 화려한 설명들, 고급스럽게 디자인된 패키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성은 단호한 목소리로 되받아친다.
“매달 수입의 절반을 커피에 쓰는 건 미친 짓이야.”
장바구니의 스크롤을 아래로 내릴 때마다, 내 마음속 전장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구매 버튼은 밝게 빛나고 있지만, 그 아래로 쌓여가는 총합 금액은 차가운 현실을 상기시킨다. ‘어떤 커피를 사야 내가 만족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난점은 내가 커피를 직접 마셔보고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원두를 제공하는 로스터리들은 대부분 땅값이 저렴한 지방에 위치해 있어,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결국, 지금까지의 경험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원두의 맛과 향을 떠올리며, 단순한 정보와 상상만으로 원두의 성향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 과정은 더 신중한 선택을 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쌓아온 커피에 대한 지식을 확인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장바구니를 닫고 다시 연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어느새 장바구니는 단순한 물건의 목록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대화가 된다. ‘무엇이 나를 설레게 했지?’, ‘지금 이 원두를 산다면, 나는 더 행복해질까?’ 답을 찾기 위한 고민은 끝이 보이지 않는 사투처럼 느껴진다.
장바구니와 성찰
결국, 장바구니를 채우는 행위는 단순히 소비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매일의 커피 한 잔에서 느껴지는 행복과 충만함이었다. 단순히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커피를 포기할 수는 없다. 매일 집에서 내리는 한두 잔의 커피는 아침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는 따스한 무지개 같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는 과정과 끝에 내려진 커피는 나의 감각을 일깨우고 하루를 시작하는 조용한 의식이었다.
이번달 지금까지 커피를 두 번 샀다. 첫 구매는 12월의 문을 열었던 날, 두 번째는 오늘이었다. 나머지 장바구니의 원두들은 그림자처럼 고요히 머물러 있다. 내면의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하며, 앞으로 최대 두 번의 추가 구매만을 허락하기로 오늘 새롭게 약속을 맺었다. 그 이상의 소비는 단순한 사치를 넘어 나의 재정적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배반이 될 것이다.
장바구니는 나를 더 성찰하게 만들었다. 욕망과 이성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팽팽한 줄타기 위에서 섬세하게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안정을 되찾으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유지하는 섬세한 균형의 기술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