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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러너 Aug 21. 2024

시간은 간다.. 점점 빠르게

31세 히키코모리 편의점 주말알바 4일 차

2024.08.18


어제는 피곤에 지쳐 밤 10시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아쉽게도 깊게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나 깨기를 반복했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더 오래 잔 것 같다. 새벽 5시에 맞춰둔 알람이 있었지만,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이미 눈이 떠졌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곧바로 꺼버렸다.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출근이 나를 침대 밖으로 끌어냈다. 잠시 저항하다가 5시 10분쯤 결국 일어났다. 가족들은 모두 곤히 자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싶었지만, 그들을 깨울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냉장고에서 어제 남은 파이를 소리 없이, 남들보다 빠르게 꺼냈다.


매번 채워야 할 것이 다르다. 과자는 손댈 필요가 없었지만, 술과 음료는 많이 비어 있었다. 어떤 것들은 정말 재고가 없었고, 나머지는 재고가 0개도 아니고 충분하지도 않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듯한 느낌이었다. 겨우 몇 가지를 찾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6시부터 7시까지는 시간당 손님이 한 사람씩 들어왔다. 내 시급만큼의 매출도 나오지 않은 셈이다. 처음에는 시간이 기어가는 듯했지만, 이제는 꽤 빠르게 지나간다. 가족들처럼 나도 출근에 익숙해진 걸까. 나쁘지 않다. 계속 돈을 벌고 있는 거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7시와 8시의 경계선을 밟을 때, 나이 든 공사 인부 한 명이 들어왔다. 문을 열며 "캔맥주나 하나 사야지"라는 혼잣말이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그 말은 어쩌면 대화를 원한다는 시그널이었을지도 모른다.


"계속 공사를 하나 봐요. 여기서는 안 보이는데 어디서 하는 거예요?"

라고 운을 뗐다.

공사장은 바로 앞이 아닌, 조금 더 지난 지하철역 근처에서 진행 중이었다.

그분은 캔맥주를 사서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마셨다. 공사장이라도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건 눈치가 보인다며, 그렇지만 피로를 풀려면 캔맥주 하나는 꼭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몇 모금 만에 비우셨다.


맥주를 다 마시고 나서 내 나이를 물었다. 솔직하게 31살이라고 대답했다. 편의점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언급은 없었다.


그분의 나이는 67세였다. 우리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공사장이라는 험한 곳에서 일하면서도 50대 후반인 남자 사장님보다 젊어 보였다. 그분은 "시간이 참 쏜살같이 간다"라고 하셨다. "20대에는 20km의 속도로, 30대에는 30km의 속도로 간다면, 60대가 되면 그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 이제 내일모레면 죽어야지"라는 농담 섞인 말도 덧붙였다.


벌써 죽음을 고려할 나이가 되었나. 생각해 보니, 지금 80대 후반인 외할머니도 20년 전에 그 정도 나이였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즈음 말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현재 85~86세에 이르니까, 그분도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의 삶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분이나 나나 아직 살 날이 많은 것이다. 지금도 힘든데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삶을 지속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가 자주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너도 이제 곧 40이야"다. 이제 30대 중반이 보이는 시점에서는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지금도 위태위태하지 않은가. 병도 걸렸고, 아버지도 몇 년 만에 겨우 취직했으니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일을 하겠다고 이력서를 넣었고, 운이 좋게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정규직에 취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버지의 벌이에 비해 우리의 생활이 빠듯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가 어떤 직장에 취직하더라도 지금만큼의 삶도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더 슬픈 사실은 나나 아버지나 오늘 만난 그분이나, 모두 살 날이 꽤 길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분과 나는 주먹 악수를 했다. 짧게 지나가는 인연이지만, 약간의 친밀감을 느꼈다. 남은 생을 살아가며 좋은 관계가 쌓여간다면 죽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어렵다. 어떤 삶을 살아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밤처럼 생각이 깊어지는 주말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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