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의 정적을 깨우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에 눈을 떴다. 동이 트기도 전, 어둠이 아직 방을 감싸고 있었다. 정신이 깬 순간, 코끝이 축축한 걸 느끼며 나는 무심코 콧물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예상치 못한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어둠 속에서 그 정체를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묵직하고 끈적한 콧물과는 분명 달랐다. 본능적으로 손으로 코를 막은 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울을 보았다. 얼굴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막으려 했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의에는 붓으로 찍어 누른듯한 붉은 얼룩이 선명했다. 방으로 돌아가 불을 켜보니 침구는 이미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어지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몸은 가벼운 막대기처럼 흔들렸고, 머리는 중심을 잃고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생각이라는 것이 더 이상 나에게 속하지 않는 듯했다.
몸을 옆으로 눕히자. 심장에서 팔뚝으로 흐르는 피의 꿀렁거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팔을 따라 피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넘치는 강물이 좁은 수로를 억지로 비집고 나아가는 것처럼, 내 안의 피가 울렁였다. 심장 박동에 맞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팔뚝을 따라 흐르는 그 진동이 귀에까지 울렸다. 억눌린 듯 미묘하게 흔들리는 그 소리는 나를 더 깊은 고요 속으로 끌어당기며, 내 안의 불안을 더 크게 증폭시켰다.
최근 들어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최근의 글들에서 여러 번 작성했다시피 과도한 피로와 통증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지난 글에서 이미 적은 바 있는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이어진 두통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겨우 잠잠해졌을 뿐이다. 콧물은 조금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목젖과 코 사이 어딘가가 부어올라 호흡을 방해하는 듯한 느낌도 계속되고 있다. 두통이 금방 나아서 이 역시 금방 나을 줄 알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내 생이 이대로 마지막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이 생각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았다. 최근 여행에서 마주한 걷기 힘들어하는 외할머니,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어지러움에 시달리면서도 매일 출근하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여기에 지난 화요일, 좋아하던 외국 래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마치 끝없는 블랙홀이 나를 죽음의 심연으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그러나 동시에, 내 삶이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어제의 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워런 버핏의 방식을 따라 25개의 거시적 목표를 종이에 적어 내려 가며, 그중 다섯 가지를 선별해 집중하리라 다짐했었다. 그 목표들을 바탕으로 하루, 일주일, 월, 분기별 계획을 세우는 것. 그것이 오늘의 중요한 과제였다.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들이 나의 앞길을 밝히는 등대가 되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오늘의 몸 상태는 마치 내 앞에 거대한 벽을 세워놓은 듯했다. '여기서 멈추시오'라는 팻말을 높이 들고 서 있는 경찰관처럼, 내 몸은 더 이상의 전진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 월요일 아침, 그토록 사랑하던 커피 추출조차 할 수 없었던 그 무력감이 다시금 밀려왔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았다. 다가오는 주, 단기 알바 4일에 편의점 알바까지. 주 6일간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서히 부서지는 몸으로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죽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 망상이 귓가를 스쳤다. 누군가 보면 한심하다 여기겠지. 분명…
미래가 당연히 내 앞에 펼쳐질 거라 믿었다. 아직 30대 초반이고, 평균수명은 80대를 넘어가니 나에게도 시간이 충분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늦은 출발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살 날이 더 많다는 불확실한 기대가 있었다. 세상 사람들처럼 나도 앞으로 더 나아갈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긴 인생 중에서 이 정도의 방황은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 기대는 점점 불안으로 변해가고 있다. 살아갈 날이 많다는 단순한 믿음이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들, 주변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비보들이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의지했던 그 '당연한' 미래는 이제 너무도 불확실한 것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