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어지르는 능력.
간편하게 살기로 했다. 저장강박증까지는 아니지만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마음먹고 짐 정리, 옷장 정리를 해도 매번 버려지지 못하고 다시 어질러지는 물건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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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책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두어 개 정도의 상자에 꼭 필요한 물건만 담아보는 것. 비우는 게 익숙하지 않은 나는 필요한 것만 채워보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다. 이 박스에 침대는 어떻게 넣지? 책에는 어떠한 예외 조항 조차 없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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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안된 책상. 옷으로 탑을 쌓아놓은 암체어. 책장에 채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닥에 퇴적암처럼 켜켜이 쌓인 잡지만 예닐곱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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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간편하게 살겠다는 다짐만 간결하게 정리해버리고 말았다. 이성적인 판단이 도려내진 머리에는 새로운 합리화가 어질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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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뭐가 어디에 있었는지 오히려 헤매는 사람이었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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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을 떠올리면, 내가 있는 이곳은 완벽히 정리된 너무나 편안한 공간이 된다. 무너진 건물과 도로, 뒤집어진 차, 수많은 부상자들과 아직 수습되지 못한 시신들까지 아비규환이 된 쓰나미 피해 현장. 재난이 남기고 간 자리는 재난 당시보다 더 잔인하고 가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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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게 내린 몇 잔의 커피도 정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으름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지만, 조금 나누는 것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아름다운 생각은 클릭 몇 번으로 누구나 더 넓게 어지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당신은 어떤 기분인가요? 나로 대변되는 우리의 일상에서 당신의 기분을 헤아려봅니다. 여러분의 지나간 사연이 누군가에겐 현재의 모습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밥을, 옷을, 공간을, 곡을 때로는 한숨을 가지고 당신의 글을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