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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sleeper Jan 18. 2019

오늘의 영화 : 인 디 에어

이 선을 넘으면 나는 다른 내가 될까.

일러스트 by @napping_chronicler


오늘의 당신.

이 선을 넘으면 나는 다른 내가 될까.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걸까?” 골목길을 내려오다 A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웬일이야. 네가 그런 얘길 다 하고.” B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알잖아. 너도. 가끔 스스로 답을 정해놓고 다른 사람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길 기대하게 되는 날. 오늘이 딱 그런 날이고 하필 넌 재수 없게 나랑 걷고 있네.” A는 그렇게 말하고 머쓱한지 잰걸음을 옮겼다.

“뜸 들이지 말고 얘기해 봐.” B는 조금 흥미가 생겼다는 듯이 A를 쫓아가며 말했다.

-

“다들 나보고 오락가락한대. 오락가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떨 때 보면 내가 생각해도 내가 모순된 사람인 것처럼 느껴져.” 몇 걸음 앞서가던 A가 걸음을 늦추고 이윽고 입을 열었다.

“예를 들어?”

“안정적인 걸 좋아하지만, 고리타분한 일상이 날 질식시킬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지.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추구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을 내리길 바라지만, 다른 사람들의 동의와 인정을 탐해.” A는 말을 마치고 입술을 오므려 차가운 허공에 천천히 입김을 뱉어냈다.

“누구나 삶의 방향과 지향점을 돌아보고, 또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선택을 하지.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분 지어 주는 경계를 더듬어 보는 거 아닐까.” B는 말을 멈추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듯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선택지가 많은 사람일 거야. 그만큼 너의 경계를 확실하게 알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다양한 선택에서 그때그때 저울질하고 마음에 따라 결정하는 네가 부러워.”

-

“너무 다양해서 탈이지. 이성적이지 못한 몽상가라고 은근히 비꼬는 말로 들리는걸.” A가 한쪽 눈썹을 조금 치켜들며 말했다.

“경계 위에서 다른 사람들 눈치 보면서 아슬아슬하게 원치 않는 외줄 타기 그만하고 떨어져도 좋으니 너답게 더 열심히 흔들어보라고.” B는 능청스럽게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지금보다 더? 외줄 타기 몇 번만 더 하다간 전정기관 고장 나서 추락하겠다.”

“때로는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한두 번의 경험으론 깨닫기 힘든 경우도 있지. 여러 가지 상황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골고루 경험해보고 지금 그대로 남아 있을지 변화할지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거야. 오늘의 널 만든 건 어젯밤 네가 내린 마지막 선택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면서 내린 수많은 선택들 덕분이지. 한 번의 선택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해주진 않아. 매번 잘못된 선택일까 봐 눈치 보고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거야.” B가 의미심장한 듯 어깨에 힘을 주며 말하자, 다시 몇 걸음 앞서가던 A가 B 쪽으로 획 돌아서며 말했다. “듣고 싶었던 정답은 아니지만 제법 마음에 드는 대답인걸.”

“듣고 싶었던 말이 뭔데?” B가 물었다.

“오락가락하는 게 가장 나다운 거라는 말.” A는 상의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으며 발끝을 보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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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by @napping_chronicler


오늘의 영화.

인 디 에어.


“영화 <인 디 에어> 본 적 있어?” 골목에서 벗어나 번화한 큰길에 닿자, B는 주변을 기웃거리며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조지 클루니가 비행기 타고 다니는 영화 말이야? 본 것 같은데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

“그래 넌 전혀 라이언 빙햄(극 중 조지 클루니) 같은 성격은 아니지. 비행기 마일리지에 집착하는 점 빼곤. 다시 보면 또 새롭게 느끼는 게 있을 거야. 저번엔 기억도 안 날 만큼 지루하게 봤겠지만.”

“라이언 빙햄이 여기서 왜 나와?” A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오락가락하는 건 누구나 비슷하다고. 너하고 정반대일 것 같은 사람도, 너 같은 사람도 모두 다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넌 좀 심하긴 해.” B는 잠시 틈을 둔 뒤에 불현듯 뭔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래도 말이야. 오락가락은 단지 너의 경계선을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지, 그 자체로 네 절대적인 경계선이 될 수는 없지, 멍청아.”

“이제 가르치려고 드네. 많이 컸다.” A는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띤 채 말했다.

“충분히 너 자신을 흔들어보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네가 원하는 곳으로 돌아가면 돼. 누가 뭐라고 해도 굳이 변명하거나 해명해서 네 존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부인할 필요는 없지.”

A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답정너였나.”

“새삼스럽게 뭘.”

B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물음표 없이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엉뚱한 짓을 벌이고 싶은 건데.”




오늘의 당신은 어떤 기분인가요? 나로 대변되는 우리의 일상에서 당신의 기분을 헤아려봅니다. 여러분의 지나간 사연이 누군가에겐 현재의 모습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밥을, 옷을, 공간을, 곡을 때로는 한숨을 가지고 당신의 글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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