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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Oct 02. 2022

단단한 뺨

어머니를 생각하며 -

딱딱했다. 차갑고 단단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입관절차에서 살짝 쥐어본 어머니의 뺨은 그저 딱딱했다. 어떤 생명의 숨결도 거부하는 듯한 단단함. 아무 빛도 통과시키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닫힌 어머니의 눈. 얼굴은 생전 주무시던 모습과 똑같은데, 익히 알고 있는 주름진 어머니의 살결이 아니라 무거운 침묵처럼 굳어있는 어머니의 뺨이 낯설기만 했다. 차가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딱딱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 순간에는 낯섦이 슬픔보다 한 뼘쯤 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폐암이었다.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시던 중에 아버님과 이모님 곁에서 고요히 떠나셨다. 필요한 물건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아이들만 태워 무작정 병원으로 달려갔다. 눈물도 흘리지 않고 남편은 고요히 운전했다.      


연대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하고도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고인의 시신은 이미 장례식장으로 옮겨진 뒤였고 살아남은 자손들은 절차대로 바쁘게 움직여야했다. 상조회사에 연락하고, 장례식장에 음식을 주문하고, 형제들 다 같이 상복을 맞춰 입고, 아버님도 도와드려야했다. 가족과 직장,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형님에게서 지난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상조회사 직원이 찾아왔다. 과장이라 불린 상조회사 직원은 침착하고 숙련된 태도로 진행과정을 설명했다. 돈과 관련된 얘기들이라 냉정하게 판단하며 확인해야한다. 울고 있을 틈이 없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조화와 조기가 도착했다. 그럴 때마다 정신 차리고 확실하게 배송확인 사인을 했다. ‘상주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여기저기 쫒아가서 확인도 했다. 쟈켓에 넥타이 까지 처음 입어보는 옷을 입고 불편해하는 작은 아이를 추스르고, 게임하고 싶어 하는 큰 아이를 얼러가며 머리 없이 몸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문상객 맞을 준비를 했다.     


오후가 되자 생각보다 일찍 이모님들이 도착하셨다. 형제 중에 제일 먼저 떠난 자매를 보며 이모님들은 오열하셨고 큰아들이신 아주버님과 남편의 손을 잡고 토닥이셨다. 곧이어 찾아오신 분들과 마주 절하고 인사 나누며 위로의 말을 들었다.      


시간은 더디지만 확실히 흘러 입관시간이 되었다. 이제야 어머니 얼굴을 볼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고 고요히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입관은 이미 생명이 떠나간 육신에게 산 자들이 인사를 남기며 정중하게 치러졌다.      




다시 장례식장으로 내려왔다. 계속되는 조문객을 맞으며 두 손 맞잡고 고개 숙여 절을 하면서도 어머니의 단단한 뺨에 손이 닿던 그 순간의 촉감이 떠올랐다.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감촉. 나까지 차가워질 것 같은 차가움. 손님이 뜸한 틈을 타 식장 의자에 앉아 있던 남편의 손을 가만히 쥐어 보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멈춰 있던 피가 돌기라도 하는 듯 가슴이 들썩이며 크게 숨이 쉬어졌다.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의 부재와 상실감이 심장에서 쏟아져 나오듯이 밀려왔다. 오늘, 어머니가 우리 곁을 영영 떠나셨다.





어머니는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되기 직전 1월 에 돌아가셨어요. 아마 투병이 더 길어졌다면 코로나로 제한되는 부분이 많아 병간호 하기도, 이후에 장례 치르기도 수월하지 않았을거에요. 이모님들은 '느그 엄마 답게 느이들한테 폐안끼칠라고 일찍 갔나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요. 마지막까지 자식들 생각하시는 마음이 어쩜 이리 절절한지...예전에 써두었던 글을 정리해서 브런치에 적어봅니다. 제 나름으로 어머니를 추모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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