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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Oct 29. 2021

전화울렁증자의 변심

통화보다 문자가 편했던 내가 - 



사실 나는 통화울렁증이 있었다. 번호를 누르고 상대방이 나오기 까지의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목 끝에 걸리는 것처럼 두근거리거나, 막상 통화가 연결되면 당황해서 첫 말을 더듬거나, 얼굴에 피가 몰려 벌개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신호음이 자아내는 긴장감, 상대방이 나왔을 때의 낯섦, 안 보이는데 말을 이어가야하는 어려움이 상당해서 왠만해선 통화를 피하곤 했었다. 부재중 전화가 있어도 다시 거는 것을 어려워해서 원망과 비난도 꽤 들었고, 업무 상의 일이라도 직접 전화하는 걸 불편해해서 진행에 차질을 가져오기도 했다. 친구에게 전화라도 할라치면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한 후에 걸곤했을 정도였으니 전화 울렁증이 아니라 기피증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연인과 가족 외에는 오래도록 전화가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문자로 마음을 전하는 쪽이 편했다. 육아와 업무에 바쁜 친구들에게 간단히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상황과 감정을 간단히 나눌 수 있고 편지 쓰듯 내 마음을 보내는데도 편안했기 때문이다. 업무는 감정을 배제하고 메세지로만 전달하면 되니 대부분 메신저로 소통했다. 그러던 내가 변했다. 통화로 안부를 전하는데 조금 더 용감해졌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쉽게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은 아니고, 열 번 생각하고 한 번 전화했다면 이제는 네 번 정도 생각하면 통화 버튼을 누르는 정도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 관계가 희미해지고 아쉬움과 미련이 커지면서 지금의 관계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때문이다. 



종이 위에 쓴 것 같이 적당한 말을 골라 전하는 문자는 ‘글’이고 직접 내 목소리로 전하는 통화는 ‘말’이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문자가 ‘정적’이라면 통화는 ‘동적’이다. 문자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좋지만 소중한 사람에게는 더 적극적이고 확실하게 마음을 전해야 한다.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 적극적이고 동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한가지 더 이유를 찾자면 코로나 탓도 있는 것 같다.  직접 만나기 어렵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 다라 일정이 수시로 바뀌는 탓에 업무 추진 중에 변경되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바로바로 확인해둬야 업무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서 전화로 즉시 문의하거나 결정짓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자로 연락하고 답을 기다릴 동안에 통화하는 쪽이 빠르다는 것도 있고 키보드가 아닌 핸드폰 화면 터치가 능숙하지 못한 까닭도 있다. (구닥다리!!) 코로나가 가져온 사소한 변화 같지만 내게는 전화 울렁증을 조금은 극복하게 된 긍정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문자로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은 큰 기쁨이다. 안부를 전하고 가벼운 수다를 나눈 후에 ‘사랑한다 칭구야’하고 남기는 고백같이,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표현들을 아무렇지 않게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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