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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Oct 28. 2021

마음이 따뜻해서 손도 따뜻합니다

너의 별명은

나는 손이 따뜻하다. 추운 겨울에 장갑을 끼지 않아도 손의 온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제법 어릴 때부터 그랬던듯하다. 추운 날 일 마치고 돌아오신 엄마 손을 잡아드리면 엄마는 내 양 손을 번갈아 잡으며 좋아하시곤 했으니까. 교실 한 가운데 난로를 설치하고 나무나 석탄을 때서 난방을 하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춘기 고등학교 때까지, 겨울이면 아침에 등교하는 친구들의 찬 손을 내 손으로 잡고 비벼서 따뜻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 가방을 내려놓은 친구가 차가워진 손을 내밀면 그 손을 마주 잡고 ‘호오’ 뜨거운 입김을 불어가며 손을 만져줘서 붙은 내 별명이 ‘손난로’였다.



대학에 진학하고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내 손을 잡은 선배가 처음 한 말도 ‘손이 따뜻하네’였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손이 차갑다던데, 너는 손이 따뜻하니까 마음이 차가운 거 아냐?” 라는 선배의 실없는 농담에 “나는 마음도 따뜻하고 손도 따뜻해요.”라며 발끈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한참 지나 만난 새로운 연인과 손을 잡았을 때, 떨리고 긴장되어 손바닥에 흐르던 땀이 신경 쓰이던 기억도, 나와 달리 서늘한 감각의 손을 잡고 놀랐던 기억도, 나보다 훨씬 큰 손에 안정감을 느꼈던 기억도 있다. 모두 손에 관한 기억들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내 손을 어떻게 생각했었을까?




물론 손이 따뜻하다고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한여름에도 손이 따뜻해서 더운 날에 내 손이 내 몸에 닿으면 뜨거워서 나조차 싫었으니까. 특히 서늘하고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여름엔 내가 옆에 오는 것조차 질색을 한다. 그러다 찬 바람 부는 가을이 되어야 겨우 자신의 곁을 내어준다. 견우와 직녀도 아니고 서로 떨어져 있다 만나는 부부냐며 내가 투덜거릴 지경이다. 추운 겨울 쯤 되어야 남편하고 손 꼭 잡고 다닐 수 있지만 그때는 아무리 손난로인 나라도 장갑이 훨씬 따뜻하니 남편과 손을 맞잡는 날이 드물어 서운하다. 신기한 건 손난로인 나와 아이스 팩인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은 모두 손이 따뜻하다는 거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의 따뜻한 손을 다정히 잡으면 좋을텐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엄마 손 잡고 있으면 너무 더워요!”하며 두 아들 모두 시원하다고 아빠 손만 찾는다. 남편에 이어 아들한테도 외면당한 손난로다.




심리학적으로 타인에게 내가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면 따뜻한 음료를 건네라고 한단다. 손에 쥔 따뜻한 감각이 상대를 따뜻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뜻한 손은 언제나 나를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 따뜻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 않았을까? 의학적인 해석은 다를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그렇게 믿고 싶다. 마음이 따뜻해서 쌀쌀해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어 주라고 따뜻한 손을 지닌 것이라고 말이다. 이제 이 손이 활약할 겨울이 다가온다. 추운 겨울 친구의 손을 맞잡아 주었던 때처럼 누군가를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덥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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