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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Oct 10. 2022

아이유가 노래하는 화양연화

너와 나의 드라마

듣자마자 가사에 꽂히는 노래들이 있다. 아이유의 <드라마>같은.

      

처음 아이유의 <드라마>라는 노래를 들은 건 1학기 마무리하는 팀 회식 자리였다.

"혹시 <드라마>라는 노래 알아요? 아이유가 부른건데."

맥주와 하이볼, 감자튀김 사이에서 문득 노래 제목이 튀어나왔다.

“아니, 어떤 노래인데?”


케이는 요즘 이 노래에 꽂혀 계속 듣고 있다면서 한 번 들어보라며 핸드폰을 꺼내 노래를 틀었다.      

시끄러운 호프집, 사람들의 소음 속에서 사십 중반을 훌쩍 넘긴, 넘어가는, 넘길 예정인 여자 셋이 핸드폰에 귀를 대고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발랄하고 가볍게 시작했다.

'나도, 한때는.....'  

아이유의 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전해지는 이야기는 노래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맥주 덕분에 취기가 살짝 오른 사십대 중년 여인 셋은 끝까지 노래를 듣고 가슴에서 나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미혼인 케이는 헤어진 사랑에 관한 얘기라고 자신의 지난 사랑이야기를 떠올리며 가슴저려했다.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제이는 난 인생 얘기 같던데 하며 이야기를 받았다. 그때 신기하게도 스피커에서 우리가 얘기 중이던 바로 그 노래, <드라마>가 흘러나왔다. 모두 알바생이 우리 얘기 들은 거 아니냐며 신기해했고 잠시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에 턱을 괸 채 취기어린 눈으로 노래를 한 번 더 감상했다.         



나도 한때는 그이의 손을 잡고

내가 온 세상 주인공이 된 듯

꽃송이의 꽃잎 하나하나까지

모두 날 위해 피어났지

올림픽대로 뚝섬 유원지

서촌 골목골목 예쁜 식당

나를 휘청거리게 만든

주옥같은 대사들

다시 누군가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다는 말 들을 수 있을까

하루 단 하루만 기회가 온다면

죽을힘을 다해 빛나리

언제부턴가 급격하게

단조로 바뀌던 배경음악

조명이 꺼진 세트장에

혼자 남겨진 나는

단역을 맡은 그냥 평범한 여자

꽃도 하늘도 한강도 거짓말

나의 드라마는 또 이렇게 끝나

나왔는지조차 모르게

끝났는지조차 모르게   



아, 난 아무리 들어도 지난 인생을 돌아보는 초로의 여인이 의자에 앉아 햇살 가득한 창밖 풍경을 보며 읇조리는 장면 밖에 안 떠올랐다. 자신의 보잘것없던 지나간 삶을 떠올리며, 동시에 아직 삶에 대한 열정이 사그러들지 않았음을 고백하며, 조용히 끝나갈 삶을 아쉬워하며 부르는 노래가 어떻게 이렇게 밝고 명랑한 멜로디에 얹혀있을까. 스무살의 아이유는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감성과 성찰이 저 나이에 나올까. 들을수록 가슴이 저려서 자꾸 맥주를 마셨다. 동시에 어린 나이에 성공해 화려한 커리어를 쌓고 있는 아이유가 이 노래를 부르다니. 왠지 조금 억울해졌다.     

 

하지만 주연이 되지 못한 내 인생을 한탄하고 지나간 시절에 목메며 가슴 아파하는 감상의 시간은 짧았다.

인생은 모두가 주연일 수 없는 무대이며 동시에 모두가 주연인 무대라는 걸 중년의 나는 이미 체득해 알고 있다.


우리가 서 있는 무대는 대사가 없더라도, 관객이 없더라도, 화려한 조명과 박수갈채가 없더라도, 호흡이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되어야만 하는 무대다. 다시 태어나 죽을힘을 다해 빛날 생각을 하기 전에 바로 지금, 빛나지 않더라도 죽을힘을 다해 무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그게 내가 만들고 있는 나의 드라마다.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며 꽃처럼 피었던 순간이 있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아직 막이 내리지 않은 내 무대를 위해 역설적이게도 나는 다시 힘을 내어본다. 지나간 화양연화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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