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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24. 2021

친정엄마의 파김치

사랑을 위한 각서


 오늘 친정에 들러 쌀 두 포대와 김장김치, 총각김치 한 통씩을 가져왔다. 지난 주말, 김장이라고 할 만큼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두 딸들까지 챙겨 먹이시려고 엄마 혼자 고생하며 담그신 김치다. 사실 우리집은 김치냉장고도 없고 집에서 밥도 많이 하지 않는지라 김치 소비량이 많지 않다. 그때그때 마트에서 한 봉씩 사다 먹는 것이 냉장고 자리도 덜 차지하고 훨씬 편하다. 그래도 정성껏 절구고 씻어가며 이틀 내내 수고한 엄마의 정성과 노동을 알기에 감히 더 말을 보태지 않고 감사히 받아왔다.


무거운 김치통을 들고 나서는데 김치 한 통 무게가 오롯이 엄마의 땀 같아서 가져오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담글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고 얼굴도 못보고 김치만 가져가서 또 미안했다. 연신 전화로 어디서 어떻게 챙겨가라고 신신당부 하는 할매 마음을 알기에 더 마음이 무거웠다.



 집에 돌아와 작은 아이 몸통만큼 커다란 김치냉장고용 플라스틱통을 넣기 위해 냉장고를 간단히 정리했다. 테트리스 하듯 그릇들을 이리 저리 옮겨 자리를 만드는데 안쪽 구석에 밀쳐져 있던 글라스락이 하나 보였다.

"아이고 엄마 파김치구나."

 지난 번 엄마가 담가준 파김치였다. 남편은 손도 안대는 반찬이라 안 챙겨줘도 된다고 했는데, 내가 좋아하니 나 혼자라도 먹으라고 굳이 싸서 들려줬던 파김치다. 뚜껑을 열면 파의 매운 냄새와 액젓의 강한 비린내가 흘러나오는 엄마의 파김치. 작은 딸네 집에 가면 동네 사람들이 한 접시 먹고 싶어서 난리가 난다는 엄마의 파김치가 우리 집에선 이렇게 홀대를 받고 냉장고 구석에서 숨을 죽여가고 있었다.


그냥 김치를 받아오는 것도 미안한데, 무심하고 게으른 큰딸네 냉장고 안쪽에서 잊혀져있던 파김치 때문에 오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오후에 읽던 책에서 하필 파김치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강형철 시인의 시집 <야트막한 사랑>에 실려있는 <사랑을 위한 각서 8 - 파김치>라는 시였다.



사랑을 위한 각서8 - 파김치 / 강형철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아직도 파김치 올라온다

고속버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비닐봉지에 싼 파김치 냄새


텃밭에서 자라 우북하였지만

소금 몇 줌에 기죽은 파들이

고춧가루를 벌겋게 뒤집어쓰고

가끔 국물을 흘린다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대처에 사는 자식들을 못 잊어

젓국에 절여진 뻣뻣한 파들이

파김치 되어 오늘도 올라온다

우리들 어머니 함께



시를 읽고 울컥해서 순식간에 눈물이 고여버렸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 마음과 파김치를 연결해서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에 공감이 되기도 하고 하필 오늘 같은 날 이 시를 만나는 바람에 시가 눈으로 읽히지 않고 마음으로 들어왔다. 김치로 가득한 냉장고를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풍요로우면서 미안하고, 부담스러우면서 기쁜 마음.


저녁에 김치를 꺼냈다. 엄마의 살같은 배추를 한 쪽 꺼내 썰어 담고 도마 위로 흐르는 김칫국물을 손가락으로 훑어 그릇에 마저 담았다. 김치를 써는 동안 파김치가 되도록 노곤해져서 집에 돌아오는 엄마의 얼굴이, 쪽파를 다듬고 무를 써는 엄마의 손이, 휘휘저어 양념을 버부리는 엄마의 뒤태가 자꾸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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