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히면서 동시에 깊어지기는 어렵다. 넓히는 자는 깊이를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통찰력과 창조의 에너지도 기대해선 안 된다. 넓이를 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깊이와는 다른 선이다. 깊이를 동반하지 않은 넓이는 권장되지 않는다.
이승우 산문집 <소설을 살다> 중 <고독과 싸우다> 마지막 문단
어릴 때부터 잡다한 상식이 풍부한 편이었다. 굳이 몰라도 상관없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여러 방면으로 화제가 풍부했다. 호기심이 많았던 탓도 있고 글 읽는 속도가 빨랐던 탓도 있다. 사실은 사회성 부족으로 친구가 없던 탓에 혼자 백과사전류의 책들을 탐독하다보니 얻게 된 뜻밖의 스킬이었다. 한 분야를 깊게 파지도 않고 대충 훑어본 지식으로도 누구를 어디에서 만나건 아는 척 하며 대화에 끼어들기 충분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사람을 사귀는 것도 금방 밑천이 바닥나는 내 지식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면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을 주고 쉽게 가까워지지만 그 뿐이고, 깊이있게 오래 가는 친구는 몇 없었다.
넓고, 얉은, 앎이고 관계였다.
스스로 깊이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고, 늘 그 점을 아쉬워 했다. 깊은 사색의 힘을 지닌 사람, 깊은 지식을 지닌 사람을 만나면 금방 작아지며 열등감을 느끼곤 했다.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오기는 했지만 역시나 깊이가 가진 통찰력에는 항상 뒤질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어느 분야든지 간에 한 가지에 깊이 파고들 수 있을 만큼의 운명적인 만남 자체가 부럽기도 했다. 우유부단한 성격탓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어느 한 가지를 고르는게 어려웠었다.
중년으로 접어드는 지금도 여전히 여기 조금, 저기 약간씩 아는 것은 많지만 정작 쓸모있는 지식은 가지고 있지 못한 듯 하다. 소설가들의 소설가라 불리는 이승우의 저 문장은 그래서 나를 아프게 찌른다.
넓은 것도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으니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깊이를 동반하는 넓이가 진정 매력있다는 것을 요즘 깨닫는다. 한 분야만 알고 나머지에 전부 무지한 깊이도 문제지만, 넓기만 하고 깊이가 없으면 작은 바람에도 떠내려가버리는 것처럼 의미를 두기 어려울 것이다. 깊이를 동반한 넓이가 되도록 에너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 글쓰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더 깊어지고자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