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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19. 2021

모두를 감싸안는 맛

어머니 만두를 기억하며 


결혼 후 시댁의 입맛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어머니의 손만두다. 어느 집이나 집마다 고유한 손맛이 있을테니 시댁 만두맛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어머니 만두는 입맛만이 아니라 크기에도 적응해야했다.     



 요즘에는 만두피를 사서 빚거나 아예 만두를 사서 먹지만, 시댁에선 만두피까지 직접 반죽해서 만두를 빚어먹었다. 보통 만두를 빚는다고 하면 반죽을 치대고 주전자 뚜껑 같이 동그란 그릇으로 예쁘게 찍어서 만두피를 만들고 소를 넣어 빚는 모습을 떠올릴 텐데, 어머니는 내 생각을 뛰어넘는 만두를 만드셨다. 조그맣고 예쁜 모양의 만두가 아니라 손으로 대충 반죽을 뜯어 최대한 크게 늘린 다음 속을 왕창 집어넣는, 그야말로 어른 손바닥만한 왕만두, 어머니 스스로도 ‘우리끼리 맛을 즐기려고 먹는 만두지 누구에게 대접할 만두는 아니다’라고 겸연쩍게 말씀하실 정도로 못난이 만두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손님상에는 절대 만두를 내놓지 않으셨다.     

 

 그 정도로 크게 빚기 위해서는 먼저 반죽이 찰져야 한다. 일차 숙성을 끝내고 비닐로 반죽덩어리를 꽁꽁 싼 다음 아버님이 발로 하루 저녁을 밟은 후에 서늘한 곳에 놔두면 커다랗게 늘려도 찢어지지 않는 어머니 특제 만두피가 완성된다. 잘 숙성된 반죽을 도톰하게 뜯어 늘린 후 속을 듬뿍 넣고 오므려서 빚은 만두를 멸치 다시마 육수에 데쳐낸 후 매실 간장에 찍어 먹으면 두 개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였다. 만든 만두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식구들 모두 하루 종일 집안을 오가며 집어 먹었다. 피가 도톰한 만두는 식힌 후 기름에 튀기듯이 군만두를 해먹어도 일품이었다. 낮에는 만둣국, 저녁에는 군만두만 먹어도 풍성한 명절을 보낸 기분이 들었다. 만두를 빚어야 명절 느낌이 들었다.     


 만두를 빚기 위해 어머니 아버지는 명절 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두부와 돼지고기를 사다 놓으시고, 당면과 숙주, 부추와 김치도 씻어서 물기 뺀 후 다져놓는다. 돼지고기도 숭덩숭덩, 처음 먹는 사람은 비계맛이 너무 진해 먹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잘라 넣으신다. 어른들은 그 기름진 맛에 신김치의 맛이 어우러졌을 때는 최고 맛있다고 좋아하셨지만 갓 결혼한 새댁이었던 나는 살코기가 아니면 먹기 어려워서 남몰래 뱉어내기도 했었다.     



 재작년 1월, 폐암이 악화되어 입원하셨던 어머니 곁에서 얼른 회복하시라고 이것저것 말을 보태고 있을 때였다. 퇴원이 어려울거라는 걸 모두들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다. 목소리를 내어 말을 못하실 정도였지만 전하는 얘기에 다 반응을 하고 계시던 어머니에게 여쭤보았다. “어머니, 다가오는 설에 어떤 음식이 드시고 싶으세요? 이번 설에는 집에서 뭐 해 먹을까요?” 어머니는 온 얼굴의 근육을 오무려 입모양으로 대답하셨다. ‘만두’라고. 모였던 가족들이 다 같이 웃으면서 ‘그래요 어머니 우리 만두 해먹어요, 얼른 나으세요’, ‘우리 어머니 진짜 만두 좋아하신다니까’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다음 날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고 2년째인 지금 와서 생각하니 정말 만두가 드시고 싶었다기보다 당신이 가신 후에도 남은 자손들끼리 사이좋게 오순도순 모여 만두를 빚으며 지내기를 바라신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곧 추석이다. 올 추석에는 송편 말고 만두를 빚어볼까 한다. 어머니 맛은 흉내도 못 내겠지만 만두를 빚고 나눠먹는 그 순간이 제사보다 더 어머니를 추억하고 기리는 순간일 것이다. 푸짐한 왕만두를 잔뜩 빚어서 쪄먹고, 끓여먹고, 튀겨먹으면 어머니 안 계신 명절이 조금 덜 쓸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추석 즈음에(아마 9월쯤에가) 써놓았던 글입니다. 1월에 어머니 기일이 있어요. 올해는 제가 처음으로 제사를 모시게 됩니다. 아직 시간은 있지만 첫 제사다 보니 왠지 긴장이 됩니다. 어머니 좋아하시던 만두를 빚어 올려볼까 생각이 들었다가 써둔 글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눈 내리고 추운 날,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따뜻하게 보내시길 마음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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